목차
1. 머리말
2. 『三國遺事』
1) 一然의 생애와 『三國遺事』의 편찬
2) 『三國遺事』의 구성과 내용
3) 『三國遺事』의 편찬 동기와 사학사적 가치
3. 『帝王韻紀』
1) 이승휴의 생애와 『帝王韻紀』의 편찬
2) 『帝王韻紀』의 구성과 내용
3) 『帝王韻紀』의 편찬 동기와 사학사적 가치
4. 『三國遺事』와 『帝王韻紀』의 비교 검토
5. 맺음말
본문내용
역사는 시대의 것이다. 역사 기록은 인간 의식의 것이다. 역사서는 특정 시대와 특정 의식의 것이다. 본고에서 검토하고자 하는 역사서, 『三國遺事』와 『帝王韻紀』도 一然과 李承休의 것이며, 고려 후기의 것이다.그들과 유지된 현재의 간격이 상당히 멀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자리에서 그들을 조명하고자 나선 이유는 간격을 넘어 존재하는 사라지지 않을 가치에 대한 관찰과 고민을 위함이다.一然은 승려였고, 李承休는 유학자였다. 대신 『三國遺事』와 『帝王韻紀』는 공히 13세기 후반의 것이다. 본고의 문제 의식은 여기서 출발한다. 인간 의식이 시대를 어떻게 역사 기록으로 담아내며, '특정'과 결부될 때 그 의식은 시대를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관찰해보고 싶은 것이다. 따라서, 본고는 우선 두 역사서에 한 장씩의 공간을 분할하여 두 역사가의 의식을 관통하는 시대와 역사 기록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역사가의 시대 속에서 삶과 의식을 연결시키고, 그 과정에서 발생한 역사서의 편찬 배경과 동기를 정리하고자 한다. 그 다음으로 각 역사서의 구성과 내용을 살피고 그 가치를 파악할 것이다. 끝으로, 두 역사서를 한 장에서 비교 검토하여 같은 시대에 쓰여진 역사서임에도 불구하고 『三國遺事』와 『帝王韻紀』가 어떻게 다른 역사 기록으로 표상 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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