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삼국유사
- 최초 등록일
- 2004.05.23
- 최종 저작일
- 20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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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삼국유사>>란?
2.<<삼국유사>>의 해제
3.일언 찾기와 <<삼국유사>> 이해하기
(1)일언이라는 사람
(2)일언의 역사의식
(3)<<삼국유사>>의 체재와 내용
(4)당시의 역사의식
(5)<<삼국유사>>의 편찬목적
(6)<<삼국유사>>의 사학사적위치
4.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상호비교
(1)체재의 성격
(2)서술방법
(3)사학사적 의의
5.의견제시
6.참고문헌
본문내용
- 4.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상호비교 -
⑴ 체재의 성격
삼국사기가 왕명을 받들고 김부식이하 10여명의 편찬위원들이 편찬한 정사(正史)였던 데 대해서, 삼국유사는 일연이라는 개인이 편찬한 사찬서(私撰書)였다. 이 점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체재(體裁)를 성격이 매우 다른 것으로 만들었다. 즉 「삼국사기」는 중국에 있어서 정사를 편찬하는 표준적 체재인 기전체(紀傳體)를 취하게 하였으나, 「삼국유사」는 저자의 관심의 각도에 따라서 자유로이 주제를 선택할 여지가 더 많이 허락되는 체재를 갖추게 된 것이다.
「삼국유사」의 체재를 무엇이라 정의할 수는 없으나, 그것이 저자 개인의 관심을 최대한으로 나타낼 수 있는 자유로운 형식의 사서류(史書類)인 것만은 분명하다. 물론 「삼국사기」도 일정한 목적 밑에 기사(記事)를 선택하고 예대한 편찬자들의 해석을 가미시키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정사로서의 성격상 왕실 중심, 통치자 중심의 사료가 주된 편집 대상이 되었다. 「삼국사기」에서 민중 관계 사료를 찾아보기가 힘든 것은 그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삼국유사」는 그러한 제약을 벗어날 수 있었다. 따라서 귀족이나 민중이나 간에 일연은 아무런 제약 없이 관심의 대상이 된 사료들을 수집하여 수록하였다.
이 점에서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에 비하여 주제나 사료의 선정이 훨신 자유로왔다고 볼 수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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