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전시가 왕발의 送杜少府之任蜀州(송두사부지임촉주) 분석 (해석,주제,운자,평측,풍격)
- 최초 등록일
- 2021.05.25
- 최종 저작일
- 20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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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국고전시가 왕발의 送杜少府之任蜀州(송두사부지임촉주) 분석 (해석,주제,운자,평측,풍격)"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작자 소개 - 王勃[왕발]
2. 작품의 배경
3. 내용
4. 시형 - 오언율시[五言律詩]
5. 분석
본문내용
1. 작자 소개 - 王勃[왕발]
자가 자안(子安)이며 강주(絳州) 용문(龍門) 사람이다. 6세 때부터 문장을 쓸 만큼 뛰어난 재주가 있었으나, 교지령(交趾令)으로 좌천해 간 아버지를 찾아 배를 타고 가다가 26세 때에 강물에 빠져 요절하였다. 왕발은 수의 유명한 학자 왕통(王通)의 손자이며, 시인 왕적(王績)의 조카로 시문에 뛰어났다.
조숙한 천재로 6세 때 문장을 잘하였고, 17세 때인 666년 유소과(幽素科)에 급제하였다. 젊어서 그 재능을 인정받아 664년에 이미 조산랑(朝散郞)의 벼슬을 받았다. 왕족인 패왕(沛王) 현(賢)의 부름을 받고 그를 섬겼으나, 당시 유행하였던 투계(鬪鷄)에 대하여 장난으로 쓴 글이 고종(高宗) 황제의 노여움을 사게 되어 중앙에서 쫓겨나 쓰촨 지방을 방랑하였다. 뒤에 관노(官奴)를 죽였다는 죄로 관직을 빼앗기고 교지(交趾:베트남 북부)의 영(令)으로 좌천된 아버지를 만나러갔다가 돌아오던 중, 배에서 바다로 떨어져 익사하였다. 그의 작품에는 정치상의 좌절로 인한 불평을 토로한 작품이 많고 시형은 오언율시와 오언절구가 많다.
양형·노조린·낙빈왕 등과 함께 초당 4걸(四傑)이라 불리는 당나라 초기의 대표적 시인이다. ‘왕양노락(王楊盧駱)’이라 불렸던 그는 종래의 완미한 육조시(六朝詩)의 껍질을 벗어나 참신하고 건전한 정감을 읊어 성당시(盛唐詩)의 선구자가 되었다. 특히 5언절구(五言絶句)에 뛰어났으며, 시문집 《왕자안집(王子安集)》 16권을 남겼다.
2. 작품의 배경
어느 날 당초기의 시인 왕발이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 杜兄(두형)과 장안성에 올랐다. 두 사람은 묵묵히 말이 없었고 눈앞에 펼쳐진 팔백리의 대지가 높은 성벽과 우뚝 솟은 궁전을 에워싸고 있어 그 기세가 지극히 웅장하였다. 왕발이 먼저 침묵을 깼다. “두형, 이번에 蜀州縣尉를 맡으러 四川으로 가는데 몇 개의 나루를 지나야 합니까?” 杜少府는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해가며 말하기를: “백화진·만리진·강수진·섭두진·강남진 모두 다섯 개의 나루인데 전부 岷江의 중요한 나루들이야” 왕발이 머리를 끄덕이고 말하기를 “여기서 蜀州을 바라보니 風烟이 가로막고 있으니 노형께서는 건강에 조심해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참고 자료
윤정현 엮음,『중국역대명시감상』, 문음사, 2001
김원중 역해, 『唐詩』, 민음사, 2008
기태완 선역, 『당시선上』, 보고사, 2008
이수웅, 『역사 따라 배우는 중국문학사』, 다락원,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