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포로였던 도공의 문화
- 최초 등록일
- 2021.04.18
- 최종 저작일
- 2020.06
- 2페이지/ MS 워드
- 가격 1,500원
소개글
임진왜란 당시 포로로 잡혀갔던 도공들이 일본에서 일으킨 문화에 대해 기술한 자료입니다.
모든 내용은 당시 강의내용과 강의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일본은 임진왜란으로 조선에서 데려간 포로 가운데, 도공(陶工)들의 도자기 제조로 일본 도자기업에 큰 발전을 볼 수 있었다.
조선의 세종은 명나라의 ‘처녀와 금은 조공’이라는 가혹한 요구에 금·은광 폐쇄라는, 금·은을 캐지 않는 소극적인 대책을 펼쳤다. 이러한 소극적인 대책은 세종뿐만 아니라 선조에서 헌종까지 조선의 전반을 걸쳐서 운영되었다. 이러한 금·은광 폐쇄는 시대를 역행하는 정책으로 조선의 산업발달을 저하시키는데 일조했다. 반면 일본은 일찌감치 ‘은’이 무역을 위한 화폐임을 인식하고 ‘은’에 대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1526년 세계 최대 은광인 이와미 은광을 발견했고, 1533년에는 조선의 기술사 2명이 ‘은 제련법’인 회취법을 이와미에 전수했다. 기술은 조선에서, 꽃은 일본에서 피운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 ‘은’을 활용하여 철포, 즉 조총을 대량 생산하였고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