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교회사 (발도파와 사보나놀라 연구)
- 최초 등록일
- 2020.11.14
- 최종 저작일
- 20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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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발도 (Petrus Waldus, ?- 1217)와 그 무리들 (Waldenser)
2. 사보나롤라 (Girolamo Savonarlola, 1452. 9. 21- 1498. 5. 23)
본문내용
[리용의 빈자(貧者)]라고 불리우는 발도파는 프랑스 리용 지방의 부자 상인인 발도로부터 시작되었다. 발도파의 자료들에는 발도가 과감한 결단력을 가진 사람으로 1218년 이전에 죽었다는 사실 이외에는 그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없다. 발도는 성 알렉시오 (St. Alexio)라는 사람이 결혼하는 저녁에 신부 (新婦)와 부모를 작별하고 수도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읽고, 또 마태복음 19장에 나오는 부자 청년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읽고 나서 뜻한 바 있어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남녀 동지와 함께 복음을 전할 목적으로 1170년 하나의 회 (會)를 조직하였다. 발도는 신앙심이 깊어 돈을 들여 성자와 교부들의 문서를 통속어 (通俗語)로 번역케 하였다. 또한 성경을 번역케 하여 배우고 가르쳤다.
발도파는 성경의 가르침대로 지팡이나 주머니를 가지지 않고 복음을 전하려 나섰고 시골에서, 도시에서, 거리에서 그리고 광장에서 설교하고 토론하였다. 발도파의 설교는 단순하여 그당시 대부분의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해하기 아주 쉬웠다. 발도파는 사회에서 고난받는 자, 압박당하는 자, 병든 자에게 동정하였고 모든 사람을 형제로 여겼다. 발도는 처음에는 로마 카톨릭 교회에 남을려고 하였다. 그러나 기존 성직계급들과 충돌하게 되었다. 발도파 사람들의 독단적인 설교는 곧 리용의 대주교와 사제들의 의혹과 적대감을 불러 일으켰으며 리용의 대주교는 그들에게 설교를 중지할 것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발도는 이를 거부하였다.
지역에서 반대를 받게되자 발도와 그의 추종자들은 1170년 제 3차 라테란 회의에 참석중인 교황 알렉산더 3세 (Alexander III, 1159-1181)에게 그들도 설교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