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시인 및 시집 소개
2. 본론
ⅰ.봄
ⅱ.生의 感覺
ⅲ.성북동 비둘기
3. 결론
4.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시인 및 시집 소개
1905년에 출생하여 1977년에 사망한 김광섭 시인은 대중에게 있어 시인으로서 알려져 있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살아왔다. 1927년,「모기장」을 발표하여 시인의 길에 들어선 김광섭 시인은 그 이후 50년 동안 시작(詩作)을 해왔다. 50년 동안 시인으로 살아가면서 5개의 시집을 낼 동안, 그는 시인이자 동시에 영어 교사이기도 하였고, 언론인이기도 하였다. 이 함경북도 경성 출신의 시인은 창씨개명에 반대하여 3년 8개월 간 투옥되기도 하였고, 한때는 대통령 공보 비서관을 맡기도 하였다. 해방 이후 한국문단을 만들고 이끌어간 핵심인물로 평가받을 정도로 문단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지금은 비록 중단되었긴 하지만, 과거 그의 정신을 기리는 ‘이산문학상’이 제정된 바 있을 정도로 문학적 업적을 쌓은 그의 인생의 다양한 면모를 그의 시와도 연관 짓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 글에서는 그에 대해 전부 다루지도 못할뿐더러, 그럴 수 있는 역량이 몹시 부족하여 자세한 서술은 할 수 없고 간략히만 서술해본다. 앞으로 다룰 김광섭 시인의 네 번째 시집『성북동 비둘기』와 시인의 첫 시집인『동경』을 비교하면 그 시 세계에 있어 꽤 차이가 나타난다.『동경』은 1938년에 발간되었고,『성북동 비둘기』는 1969년에 출간되었다. 시인이 1977년에 작고한 것을 생각하면,『성북동 비둘기』는 그의 시들 중에서도 후기 시에 속하는 시들이 수록되었고,『동경』은 첫 시집인 만큼 초기 시들이 수록된 셈이다. 박근영,「이산 김광섭론」, 상명대학교 인문과학연구 3권,『상명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95년, 55쪽
그의 초기 시집『동경』(1938)은 다분히 관념적으로 민족주의적 의식을 펼쳐나갔다. 그의 중기 시집『마음』(1949),『해바라기』(1957)에선 관조적인 자기 성찰의 의식을 보여주나, 여전히 관념적인 면모가 강하였다.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인『성북동 비둘기』에 이르러서는 그전의 시집들과는 다른 양상을 가진다.
참고 자료
장석주,「3. 해방 전 친일문학에서 해방 전후의 혼란기 까지(1940-1949)-김광섭」,『나는 문학이다』, 나무이야기, 2009.
홍정선,「김광섭, 시인이란 기억 뒤의 문단건설자」,『한국사 시민강좌 제43집』, 일조각, 2008.
박근영,「이산 김광섭론」, 상명대학교 인문과학연구 3권,『상명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1995.
최명국,「『성북동_비둘기』의 자연과 문명에 대한 거리(距離)의식」,『비평문학 제32호』, 2014.
최정선,「김광섭 시연구」,『청람어문교육 8』, 청람어문교육학회,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