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사건
- 최초 등록일
- 2019.06.17
- 최종 저작일
- 20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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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트라우마 기억 형성
2. 국가 폭력의 경험
3. 치유의 실패
4. 과거청산의 제도화와 사과
Ⅲ. 결론
본문내용
Ⅰ. 서론
제주 4·3사건은 1948년 4월 3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일어난 양민학살로, 일본제국의 패망이후 남북한의 이념갈등 발단이 되어 봉기한 남로당 무장대와 미군정 국군, 경찰 간의 충돌 과정과, 이승만 정권 이후 초토화 작전 및 무장대의 학살로 많은 주민이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건이다.
Ⅱ. 본론
4·3사건은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 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많았던 불행한 사건이었다. 4·3사건은 많은 인명이 희생된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50여년간 사건의 진실이 묻혀있다 1990년대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진상규명이 진행될 수 있었다. 진상규명이 뒤늦게 이뤄진 것은 사건이 대한민국 정부수립 시기에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에 의해 자행된 국가 폭력으로서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관련된 문제적 사건이었기 때문이었고, 사건의 진실은 오랜 시간 국가권력에 의해 은폐되고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4·3사건의 은폐와 왜곡은 사건의 상처와 더불어 이중의 고통을 제주도민들에게 짊어지게 했다. 국가의 주도 아래 사건의 진실은 철저히 은폐되었고, 사건을 직접 경험한 제주도민들은 자신들의 희생이 ‘공산폭동’에 의한 결과로 기억되도록 강요받았다. 사건 이후 이러한 정치적 상황과 삶의 조건 속에서 제주사람들의 의식과 심리는 극심한 패배주의, 공포심, 자책감, 체념석 숙명론, 허무주의 사고에 빠졌고, 공산주의에 대한 반감이 극대화되어 진보주의 자체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는 레드 콤플렉스를 가지기도 했다. 또한 4·3사건은 한국 전쟁기 학살 사건과 함께 현 한국의 지배질서를 형성한 근원적 폭력에 해당하는 사건이다. 더불어 오랜 기간 계속된 조직적 은폐와 강요된 망각의 모습은 한국 현대사가 폭력적 진실을 어떻게 대면해 왔는지를 대표적으로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민주화 이후, 4·3사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제주도민과 한국 사회에 상처로 남아있는 4·3사건의 기억은 과거청산 작업의 진척과 함께 변화를 맞았다.
참고 자료
제주 4·3사건 트라우마에 대한 문화적 기억과 영상적 재현, 2014, 김종철
제주 4·3 시기 아동학살 연구, 2006, 허영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