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가 경상도의 중심이 되기 까지
- 최초 등록일
- 2018.06.16
- 최종 저작일
- 20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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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론: 대구광역시는 현재 인구가 약 250만 명인 대도시로써 경상도의 중심지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인구가 거의 없었다. 1454년 작성된 세종실록지리지의 따르면 대구의 인구는 4,425명 이었다. 하지만 1600년대의 조사에 따르면 대구의 인구는 51,463명이다. 얼마 안 되는 시간에 인구가 10배쯤 늘은 것이다. 이 리포트는 교통적으로도, 지리적으로도 이점이 많은 대구지역이 왜 1600년대 전까지는 인구가 적었는지부터 시작해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한 이유를 설명한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고대 국가의 수도
2. 경주의 발전
3. 대구가 불리했던 이유
4. 대구의 발전
Ⅲ. 결론
본문내용
서론
대구광역시는 현재 인구가 약 250만 명인 대도시로써 경상도의 중심지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인구가 거의 없었다. 1454년 작성된 세종실록지리지의 따르면 대구의 인구는 4,425명 이었다. 하지만 1600년대의 조사에 따르면 대구의 인구는 51,463명이다. 얼마 안 되는 시간에 인구가 10배쯤 늘은 것이다. 이 리포트는 교통적으로도, 지리적으로도 이점이 많은 대구지역이 왜 1600년대 전까지는 인구가 적었는지부터 시작해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한 이유를 설명한다.
<중 략>
2. 경주의 발전
하지만 경주는 지리적으로 한쪽에 치우쳐있다. 통신수단이 없어서 국가영토 내부의 교통이 국가의 통치에 중요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주는 고대국가의 수도로 유지되고 성장되었다. 이 단락에서는 경주가 대구를 제치고 선택된 이유를 서술한다.
1. 식량의 요인
고대시대 때 영남 지역에서 경지로 사용할 수 있는 땅은 해안단구, 곡저평야, 선상지, 하안단구가 있었다. 범람원은 홍수의 위협이 있었으므로 자연제방 부분에 경작을 했을 것이다.
융기축에 속하는 소백산맥과 태백산맥에서 발생한 하천에 포함되어있는 하안단구는 하천을 따라서 가늘고 긴 형태로 되어있다. 해안단구는 해안충적평야를 활용하는 것이 힘들었던 고대의 동해안에서 경작을 할 수 있는 예외적인 땅이었다.
곡저평야의 경우에는 구릉지 지역의 하곡에서 만들어진다. 영남지역은 산지가 넓어서 사람이 확보할 수 있는 경작지의 규모는 적었다. 그러나 경주는 단층성 때문에 선상지의 밀도가 높게 분포한다. 즉 경주지역의 선상지는 서로 연결되어서 규모가 큰 것이다. 산지 전면에 넓은 단층곡선이 있기에 산지에서 옮겨진 사력들이 쌓일 면적이 컸기 때문이다.
빙기동안 지속되던 기계적 풍화작용으로 만들어진 물질이 쌓인 후, 간빙기에는 하천 주변의 분지가 식생으로 피복되었다. 그러므로 선상지를 만든 하천은 역으로 지형을 하방 침식하며 유로를 만들어서 현재 선상지면은 홍수로 인한 위험을 걱정해도 되지 않은 안정된 곳이다. 하지만 퇴적층에 자갈이 많아서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자갈을 없애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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