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 이광수 저
- 최초 등록일
- 2018.05.26
- 최종 저작일
- 20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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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작가소개
2.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그 속에서의 작가의 활동
3. 작품 속 인물
4. 줄거리
5. 제목의 의미
6. 의의
7. 감상
8. 참고문헌
본문내용
1. 작가소개
● 춘원 이광수
평북 정주 출생으로, 한국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계몽주의·민족주의 문학가 및 사상가로서 한국 근대 정신사의 전개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05년 유학생으로 일본에 건너가 신학문을 접하며 홍명희·최남선 등과 사귀었고, 톨스토이의 인도주의에 심취했다.
1919년 '2·8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상하이로 탈출,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의 주간으로 활동했다.
1921년 단신으로 상하이에서 귀국, 선천에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가 불기소처분으로 풀려난 뒤에는 변절자로 비난받기도 했다. 1939년 조선문인협회 회장으로 선출되어 친일 행위를 했으며, 해방 이후 친일파로 지목되어 비난을 받았다. 한국전쟁 중 인민군에게 납북되어 그해 10월 북한에서 병사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무정》, 《흙》, 《유정》, 《단종애사》 등이 있다.
2. 작품의 시대적 배경과 그 속에서의 작가의 활동
이광수는 병합 전인 1905년 14살의 나이에 일본의 한 중학교에 입학하여 1910년 3월 귀국하였다. 이광수가 일본유학을 간 시점은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직후로, 전쟁 승리로 인해 일본의 재정과 경제 규모가 팽창하고, 전후 산업이 발흥해서 호경기를 이루고 있을 때였다. 일본에서 배운 학문을 조선에 가서 활용해야겠다는 다짐과 기대는 재일 유학생이 발행하는 잡지에서의 귀국 소감에서 자주 확인된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신지식층’의 활동을 통해 조선이 발전하리라는 것에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1910년 8월 일제의 의한 조선의 강제병합은 이광수 뿐만 아니라 조선의 다른 지식인들을 좌절시킨 사건이었다.
1913년 4월 이광수는 오산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중국과 연해주를 떠돌며 방랑하게 되는데 이 때 그가 느낀 것은 각 각 문명과 야만으로 대응되는 서양과 동양의 강렬한 대비였다.
참고 자료
이경재, 「이광수의 무정에 나타난 근대의 부정성에 대한 비판」
류수연, 「‘영채전’, 계몽적 영정과 봉인된 육체 -이광수의 무정에 대한 고찰-」
네이버 지식백과] 이광수 [李光洙] (Basic 고교생을 위한 문학 용어사전, 2006.11.5, (주)신원문화사)
류시현, 「1910년대 이광수의 시대인식과 전망 -매일신보 글쓰기를 중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