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사답사기
- 최초 등록일
- 2018.02.20
- 최종 저작일
- 20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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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가을로 접어드는 늦여름, “해동제일의 지장도량“ 고운사에 다녀왔다. 이 세상을 떠나 하늘 나라에 가면 염라대왕이 이리 묻는다 한다. ”고운사엔 다녀왔는가?” 그에 대한 답을 오늘 만들어 가리라.
고운사는 경상북도 의성의 등운산 자락 부용반개형상(연꽃이 반쯤 핀 형국)의 천하명당에 위치한 조계종 16교구의 본사로서, 신라 신문왕 원년(서기 681년)에 해동 화엄종의 시조이신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신 사찰이다. 민가로부터 3km 정도 떨어져 오염되지 않은 순수함을 자랑하며, 일주문에 이르는 솔밭 사이 비포장 길은 부처님께 진실된 마음으로 다소곳이 다가서는 불자들의 마음처럼 포근하고 정감 넘치는 모양을 하고 있다.
“騰雲山孤雲寺” 현판의 고운사 일주문은 부드럽게 곡진 자연 그대로의 굵은 기둥이 각기둥의 협시를 받으며 육중한 지붕을 가뿐히 이고 있다. 지붕의 날아오르는 듯한 기상이 예사롭지 않다. 근데 구름 운(雲)자가 두 개나 있다. 오늘은 구름에 떠서 다닐 모양이다. (합장)
일주문 속에서 보이는 천왕문을 지나니 먼저 오래된 석불을 봉안해 놓은 고불전(古佛殿)이 나타난다. 요철 모양의 구조가 특이하다. 은은한 향냄새가 아주 좋다.
고불전 위로 커다란 가운루(駕雲樓)가 출항하는 배처럼 서있다. 그 뒤를 우화루(羽化樓)가 따른다. 이들은 신라 말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세웠다는 누각들이다.
신라 말기 대문장가이며, 신라 최고의 지성인 고운(孤雲)은 신라왕실에 대한 실망과 좌절감을 느낀 나머지 40여 세 장년의 나이로 관직을 버리고 소요자방(逍遙自放)하다가 마침내 은거를 결심한다. 당시의 사회적 현실과 자신의 정치적 이상과의 사이에서 빚어지는 심각한 고민을 해결하지 못하고 결국 은퇴의 길을 택한다. 이후 즐겨 찾은 곳 중의 한곳이 강주(剛州) 즉 지금의 경상북도 의성(義城)이다. 고운사의 가운루와 우화루는 그가 세상을 유랑할 적에 여지ㆍ여사 양 대사와 함께 세운, 고운사의 얼굴이라 불릴만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누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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