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양명학의 전기 사상
2. 양명학의 후기 사상
3. 양명학 전·후기 사상의 차이
본문내용
왕양명의 실천적 삶과 그의 사상을 잘 알 수 있는 책이 『전습록(傳習錄)』이다. 이 책은 왕 양명의 제자인, ‘서애(徐愛)’가 기록한 것이 14조목, ‘육징(陸澄)’이 80조목(15조목~94조목), ‘설간(薛侃)’이 기록한 것이 35조목(95조목~129조목)으로 총 129조목의 어록으로 구성되었고, 나머지 내용은 그 당시 지인에게 편지의 답하는 글, 학문을 논하는 편지글로 이루어져 있다. 왕양명의 사상은 보편적으로 49세에 ‘치양지설(致良知說)’을 제시한 시기를 기준으로, 그 이전과 그 이후를 각각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서 언급한다. 그러면 양명학의 전·후기 사상의 차이에 관하여 『전습록』의 내용에 근거로 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Ⅰ. 양명학의 전기 사상
1. 양명학의 고본(古本) 신뢰와 주자학 비판
『전습록』「徐愛引言」에 첫 문장에 의하면, “양명 선생님은 『대학』의 격물(格物) 등 여 러 학설에 대해 옛날 판본이 모두 바른 것이고, 대부분 앞 시대의 유학자들의 새로운 판본은 잘못된 판본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1) 라는 말을 들은 서애조차도 신기하고 파격적이고 또 한 의외이며 일반적이지 않아, 깜짝 놀랐고 좀 더 생각을 해보아도 더 놀랐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만큼 왕양명은 신유학에 대하여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또 이와 관련하여 『대 학』에 있는 삼강령(三綱領)인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에서 주자는 ‘마땅히 新民으 로 되어야 한다.’라는 학설에서도 왕양명은 『서경』「요전」과 『논어』「헌문」와 『대학』 의 내용이 모두 의미가 상통하기 때문에 親民이 옳은 것이라는 주장이다. 『대학』에 나오는 ‘격물’과 ‘친민’등과 관련된 모든 논의는 왕양명의 자신의 사상을 담 고 있는 후대에 있어서 중요한 용어로 자리하게 된다. 또한 『大學』 경문 중 ‘知止而后有定’의 해석에 대하여, 양명과 주희가 서로 의견을 달리하 는 가장 대비되는 부분이다.
참고 자료
『전습록 1·2』, 왕양명, 정인재, 한정길 옮김, 청계출판사, 2007년.
『양명철학』, 陣來, 전병욱 옮김, 예문서원, 2009년.
『맹자』, 유교경전 편찬위원회,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10년.
『대학중용』, 유교경전 편찬위원회,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11년.
『주자학과 양명학』, 시마다 겐지, 김석근·이근우 번역, 도서출판 까치, 1990년.
『동양고전이 뭐길래』, 신정근, 도서출판 동아시아,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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