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증동국여지승람 원문 및 해석(세종)
- 최초 등록일
- 2017.10.11
- 최종 저작일
- 20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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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연기현(燕岐縣)
동쪽으로는 청주(淸州) 경계까지 15리, 문의현(文義縣) 경계까지 15리이고, 남쪽으로는 공주 경계까지 13리이고, 서쪽으로는 같은 주 경계까지 13리이고, 북쪽으로는 전의현(全義縣) 경계까지 26리이고, 서울과의 거리는 2백 87리다.
【건치연혁】 본래 백제의 두잉지현(豆仍只縣)이었는데, 신라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서 연산군(燕山郡)의 속현으로 삼았고, 고려 현종(顯宗) 때에 청주에 예속시켰으며, 명종(明宗)이 감무를 두었다가 뒤에 다시 목주 감무(木州監務)로 겸임하게 하였다.
본조 태종 6년에 다시 나누어 감무를 두었다가 14년에 전의와 합쳐서 전기(全歧)라 고쳐 불렀고, 16년에 다시 나누어 현감으로 하였다.
<중 략>
【인물】 고려 이도(李棹) 태조(太祖)가 남으로 정벌하러 금강(錦江)에 이르렀을 때 물이 범람하였는데, 이도가 태조를 보호해 건너는 데 공이 있어 도(棹)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벼슬은 태사 삼중대광(太師三重大匡)에 이르렀다.
이혼(李混) 도(棹)의 7대 손이다. 원종(元宗) 때에 과거에 급제하여 충선왕(忠宣王)까지 계속 섬기면서 여러 벼슬을 역임하고 첨의정승(僉議政丞)으로 치사하였으며, 호는 몽암(蒙菴)이다. 일찍이 영해부(寧海府)로 좌천되어 바다 가운데 뜬 나무등걸을 가지고 무고(舞鼓)를 제작하였는데, 지금까지 악부(樂府)에 전해지고 있다. 이언충(李彦沖) 이혼(李混)의 형의 아들이며, 과거에 올라 여러 벼슬을 거쳐서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이르렀다.
본조 이정간(李貞幹) 이혼(李混)의 아우 이자화(李子華)의 증손이다. 어머니 김씨(金氏)의 나이 1백 2세 때에 정간은 당시 80세였는데, 어머니 앞에서 새 새끼를 가지고 희롱하여 노래자(老萊子)와 같은 어리광을 부리니, 세종(世宗)이 글을 내려 표창하였다. 벼슬은 중추원사(中樞院使)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효정(孝靖)이다. 이사관(李士寬) 이정간(李貞幹)의 아들로 벼슬이 부윤(府尹)에 이르렀으며, 그 아들 지장(智長)ㆍ예장(禮長)ㆍ함장(諴長)ㆍ효장(孝長)ㆍ서장(恕長)은 문과에 오르고, 의장(義長)은 무과에 오르니 이는 세상에 드물게 있는 일로서 선비들이 영화롭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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