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네덜란드의 경제적 변화
- 최초 등록일
- 2014.11.08
- 최종 저작일
- 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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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서론 - 17세기 후반 이전 네덜란드의 발전
2. 영국의 모직물 공업의 발달
3. 항해조례
3-1. 항해 조례의 내용
3-2. 영국과 네덜란드의 전쟁
4. 결론 - 17세기 후반 네덜란드의 경제적 변화
5. 참고문헌
본문내용
튤립, 풍차, 해수면보다 낮은 땅이 많은 나라, 2002년 축구 국가대표 감독 히딩크의 나라, 오렌지색의 나라, 네덜란드. 이 네덜란드의 17세기 후반 경제적 변화에 대하여 알아보기 전에 17세기 후반 이전의 모습을 알아본다.
17세기는 흔히 네덜란드의 황금기라고 부르는데, 이 시기 네덜란드의 경제는 농업, 축산업, 상업, 금융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네덜란드의 어업은 북해의 청어를 잡아 유럽에 공급하며 부를 축적하였다. 또, 그 돈으로 각지의 특산물을 사들여 유럽 각지로 수출하는 삼각무역도 전개하였다. 이는 한자동맹이 누려왔던 유럽의 상권을 인수받는 계기가 되었다. 어업은 선박 건조와 항해술의 발전의 계기가 되어 해양상업의 발달과도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상업의 발달은 놀라운 것이었다. 16세기 초, 포르투갈의 상선이 안트베르펜 항구에 들어오면서부터 네덜란드 전체의 번영이 시작되어서, 16세기 중반이 지나서는 네덜란드가 발트 해 화물의 70%를 맡아 운송하게 되었다. 16세기 후반에는 네덜란드 선단이 이탈리아 상인들의 주요 무대인 레반트무역에 직접 참여함으로 인해 대서양 연안·북해·발트 해를 연결하는 경제권에 지중해가 종속되기에 이르렀다. 또, 1602년 설립된 동인도 회사를 통해 아시아 지역 무역의 독점을 추구하였다. 정부로부터 받은 막강한 권력과 유럽에서 얻은 상업적 경험을 바탕으로 활동하며 아시아에서도 유럽과 비슷한 무역체계를 구축하였다. 네덜란드의 교역망은 발트 해 북단에서부터 일본의 나가사키까지 이르러 그야말로 세계의 창고라 불려도 무방할 정도였다.
황금기의 네덜란드는 폭발적인 경제 팽창을 경험하고 있었다. 암스테르담은 중개 무역과 국경 무역의 구심점이었고, 선물 무역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17세기 중엽, 네덜란드의 경쟁상대로 부상한 영국이 등장하였다. 이후에는 영국의 모직물 공업의 발전과 항해 조례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17세기 후반 네덜란드의 경제적 변화에 준 영향을 생각해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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