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14.10.05
- 최종 저작일
- 20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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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항 이후(1876~1910)의 건축
1) 세창양행 사택
2. 식민지 시대
1) 근대도시주택의 유형
3. 해방 이후의 주거 상
4. 박정희 시대
1) 새마을 운동
2) 도시의 주거 문화
5. 1980년대 이후 주거문화
1) 전원주택
2)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
본문내용
1. 개항 이후(1876~1910)의 건축
「1876년 일본과 체결한 강화수호조약을 시작으로 미국(1882), 영국 ․ 독일(1883), 러시아 ․이탈리아(1884), 프랑스(1886), 오스트리아(1892) 등 구미열강과도 수호통상을 체결하였다. 일본과 최초로 맺은 강화수호조약에 의거 부산항(1876.10), 원산항(1880.5), 인천항(1883.1)이 차례로 개항 되었다. 이들 개항장은 우리나라의 요지로서 국가의 기밀 ․ 국방 ․ 전략상 중요한 곳이었으며, 특히 한성의 관문인 인천제물포항은 국방 ․ 정치 ․ 경제적으로 중요한 장소인 관계로 6차례에 걸친 회담 끝에 개항되었다. 이어서 아관파천 이후 구미열강의 이권쟁탈을 계기로 목포항 ․ 진남포항(1897.10), 마산항 ․ 군산항(1899.5) 등이 2차적으로 개항되었다. 이들 개항장 역시 군사 및 경제적 요충지로서의 성격을 지닌 곳이었다.
일본은 부산 개항 이후 1879년 초량왜관 자리에 영사관을 세웠다. 이후 원산을 위시해서 각 개항장에 소위 의양풍 목조 2층 공관건물들을 세웠다. 일제는 우리 땅을 자신들의 병참기지화하려 했다.」
「100여 년 전 배재학당, 명동성당, 정동교회 등이 서구풍으로 세워졌다. 전통건축물 사이에 들어서는 서양식 건축물은 20세기 변화를 예고한 것이었다. 외교가 수립되며 공관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러시아, 영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영사관 등 2층 벽돌 건물이 주류를 이루는 것들이었다.
오랜 박해 끝에 신교의 자유를 획득한 카톨릭교회는 선교사의 주도하에 교회건축이 시작되었지만 대도시와 몇몇 교우촌에 지은 서양식 벽돌조 건물(약현성당-1892, 명동성당-1898 등)을 제외하고는 모두 한옥(고산성당-1894, 평양성당-1895 등)이었으며 개신교와 성동회도 한옥교회를 지었다.
1906년부터는 일본 영향하의 탁지부 건축소 관제가 공포되어, 상설 정부공사 전담체제 아래서 건축이 이뤄졌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