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조선시대 농민생활의 변화
- 최초 등록일
- 2003.06.16
- 최종 저작일
- 2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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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 농민들의 삶을 정리한 보고서입니다. 관련 보고서를 준비하시는 분들의 많은 참고 바랍니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 본론
1. 조선 전기 농업경영 방식
2. 수취제도
1) 토지제도
2) 조세제도
3) 환곡제도
3. 조선 후기 집약농법의 발전
4. 상속제도와 결혼
5. 노비제도의 변화
Ⅲ. 요약
본문내용
조선 전기 농업경영 방식은 자경, 농장제, 병작제 등 세 가지였다 할 수 있다. 조선 국가가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 것은 농민이 자신의 소유지를 직접 경영하는 자경이었다. 하지만 조한만수(早旱晩水)라는 기후적 특성으로 인한 실농의 위험과 국가의 과도한 수탈에 의해 쉽게 붕괴될 수 있었으므로 조선 전기에는 자경적 농업에 의한 농업 경영이 주도적 위치에 있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농장제는 대규모 토지에 많은 수의 예속 노동력을 동원하는 방식이었고 그 경영 주체는 주로 양반-관료층이었고 사역된 예속 노동력은 일천측천의 종모법의 노비와 과도한 국역과 소농경영의 불안정으로 투탁한 평민이었다. 비록 농장이라고 불리기는 하였으나 중․소 규모의 토지가 각지에 산재한 동종누적형의 농장이 다수였으므로 이들 예속 노동력의 집단 농동에 의해 경영된 것이 아니라 그 노비 가구에 일정량의 토지를 할당하여 주고 그 반대 급부로 사경지가 지급되는 작개제(作介制)에 의해 이 농장들은 운영되었던 것이다.
농장주의 거주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소규모의 토지라면 토지 소유자가 정률 분배하는 방식의 병작으로 운용되기도 하였으나 이 병작제가 직접 생산자의 노동 고취에 의한 생산력 증가와 토지 소유자의 직접 생산자에 대한 감시․강요가 불필요 하다는 장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 초기 특별한 사정으로 인하여 자경이 불가능한 3~4결 이하의 범위 외에는 불가능하였으므로 병작은 농장에 비해 부차적인 경영 방식이었다. 이 병작이 일반화되기 위해서는 경제적 계약관계의 안정화를 위한 사적 소유권의 보장과 생산물의 절반만으로도 안정적 재생산이 가능할 정도의 생산력이 요구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