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문학 (운문을 중심으로)
- 최초 등록일
- 2013.02.18
- 최종 저작일
- 20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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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명나라 문학 (운문을 중심으로)
목차
0. 명나라 문학의 시대적 배경과 개관
1. 명나라의 시문학 개관
2. 명대 초기의 시문학 - 원시 답습기
3. 명대 중기 - 복고기
4. 명대 말기 - 성령기
본문내용
0. 명나라 문학의 시대적 배경과 개관
명 태조 주원장은 재위 31년에 비록 공신을 주벌하고 재상을 폐지, 심지어 무고한 문인에게 문자옥을 감행하는 등 극단적인 전제를 부렸지만, 명나라를 周, 漢, 唐을 당당하게 계승한 漢族에 의한 정통적이고 강력한 제국으로 만들었다.
그뒤 明은 국내 및 국외로의 활발한 무역활동으로 자본주의적 경제요소가 촉진되었고, 과거제도가 정착되면서 개인의 자유사상을 속박하는 관제문장 곧 팔고문(八股文)이 성행하였고, 영락대전(永樂大典) 등의 발간으로 관제문화가 흥성하였다.
사상 문화의 측면에서도 정통정치, 전래사상이 종주를 지키면서도 근대사조가 일어 정통과 진보 사이의 갈등을 보인 시대였다. 그런 면에서 명대 문화는 청대와 맥락을 함께 하는데, 명청문화의 특성으로 정주이학과 육왕심학의 문화적 종주현상, 송명이학을 비판하는 황종의, 왕부지 등 사상계의 근대화학파와 [동심설(童心說)], [독서성령(獨抒性靈)] 등을 표방하는 공안파라는 문단의 낭만파들에 의한 계몽주의 현상, 그리고 고전문화의 총결산 현상 등 세가지가 문화를 추진하는 맥락이 되었다.
<중 략>
이 중 왕신중, 당순지, 모곤, 귀유광 등의 당송파는 전후7자가 복고라는 이름을 내걸고 옛사람들의 글을 베껴내는 악렬한 기풍을 반대하는 면에서 일정한 공헌을 하였으나 자기들도 복고적인 경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공안파는 원종도, 원굉도, 원중도 3형제가 이지의 영향을 받아 전후 7자의 복고주의를 반대하면서 형성되었다. 그들은 문학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하는 것이므로 고대 사람들의 글들 모방하는 것은 엄동 설한에 여름에 입는 갈포옷을 입는 것과 같이 문학 발전의 추세에 따르지 못하는 것이라고 인정하였다. 그들은, 글은 가슴 속에서 흘러나오는 성정(性情) 혹은 성령(性靈)을 써야 한다고 하면서 옛 틀에 구애되는 것을 반대하였다. 그들은 이런 이론으로 복고주의를 힘있게 타격했으며 자기들의 창착에서도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들은 심령은 무제한한 것이라고 인정하면서 사회적 실천의 중요한 의의를 소홀히 한 결과 자기들의 작품을 제재가 협착하고 사상 내용이 빈약한 길로 나가게 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