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지리]청계천의 모든것
- 최초 등록일
- 2002.12.09
- 최종 저작일
- 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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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청계천의 과거, 현재, 미래를 상세하게 만들었습니다.
많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목차
Ⅰ. 청계천의 과거
1. 조선시대의 청계천
2. 일제 강점기의 청계천(淸溪川)과 천변(川邊)
3. 광복이후의 청계천
4. 청계천의 옛 다리
Ⅱ. 청계천의 현재
Ⅲ. 청계천의 미래
1. 청계천 복원의 의의
2. 복원 기본구상
3. 사업추진 계획
< 참고문헌 >
본문내용
청계천은 경복궁 서북의 백운동에서 발원한 청풍계천(淸風溪川)을 본류로 하여 도성안의 백악, 인왕산, 남산, 매봉 등의 여러 물줄기를 모으면서 서울 도성의 중심부를 관류하여 오간수문(五間水門)으로 빠져나가는 길이 13.7Km의 하천이다. 개천 본류의 하폭(河幅)은 10∼30m 정도였으며, 지류들은 하폭 10m 이하의 소하천들이었다. 하천은 도성 내부를 거의 정확히 양분하였기 때문에, 정도 직후 서울의 설계에 기본적인 제약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그림 - 1 >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서울은 청계천 이북(이동)의 궁궐, 관아, 상가(商街), 상층(上層) 민가 지대와 청계천 이남의 중하층 민가지대로 크게 구분되었다. 청계천을 기준으로 하여 상하(上下) 이원적(二元的)인 서울의 공간적 위계가 정해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청계천은 조선왕조 개창 직후부터 도성안을 지리적으로 구분하였을 뿐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도 구분하는 상징적 계선이었다. 이러한 구분의식은 개항기에도 대체로 지속되어 외국 공관들은 모두 청계천 본류의 이남(충무로의 일본공관과 명동의 중국공관)과 이서(정동 일대의 구미공관), 즉 공간 위계상 하위 영역에 분포하였다. 서울 간선도로망 역시 청계천의 흐름을 따라 배치되어 경복궁 - 황토현, 종루 - 동대문간이 간선도로로 가능하게 되었고, 이는 사대문 중 동대문과 남대문에 우월적 지위가 부여되는 배경이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