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정궁 경복궁
- 최초 등록일
- 2012.11.20
- 최종 저작일
- 2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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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우리나라 고유의 사상이 건축과 어떻게 만났는지 그리고 경복궁 내에 어떠한 문화적 전통이 있는지에 대해 글을 썼다.
목차
1. 경복궁의 개요
2. 조선시대 사상의 배경 – 유교
3. 건축적 사상 - 풍수지리
4. 경복궁 내에서 볼 수 있는 풍수 지리적 요소
본문내용
서론
경복궁을 답사하며 우리나라의 전통 건축 중 왕이 살았던 공간인 宮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조선의 정궁이라 여겨진 경복궁을 통해 우리나라 고유의 사상이 건축과 어떻게 만났는지 그리고 경복궁 내에 어떠한 문화적 전통이 있는지에 대해 이 보고서를 통해 알아보려고 한다.
본론
1. 경복궁의 개요
그림 1
조선의 정궁으로써 태조가 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후 세워진 궁으로 큰 복을 빈다는 뜻의 경복(景福)이라고 지었다. 태조 이후의 왕들은 이궁인 창덕궁에서 살기도 하였다. 왕들이 궁에서 지냈던 시간은 경복궁보다 창덕궁이 더 많을 지경이기도 했다.
<중 략>
왕이 살던 공간, 정궁에 대해 알아보았다. 사진을 찍으며 답사하며 돌아다니는 동안 궁금했던 점 두가지가 있었다. 처음 답사할 때는 답을 해결할 수 있을지 잘 몰랐는데, 사진을 정리하고 레포트를 쓰는 도중 답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첫 번째로 궁금했던 것은 옆의 사진처럼 보(?) 끝에 있는 삼지창같은 것들에 대해 궁금했었다. 혼자 답사를 했던지라 누구와 상의를 할 수 없었는데, 이것을 처음 보고나서 계속 돌아다니면서 경복궁을 나설 때 즈음 해답을 깨달았다. 아마 새가 앉지 말고, 집을 짓게 하지 않으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두 번째로 궁금했던 점은 현판의 서체는 어째서 전부 다 다른 것일까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어떤 현판은 마치 궁서체 같고 또 어떤 것은 바탕체 같기도 하고, 고딕체 같기도 했다. 다양한 글씨체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 부분은 아직도 의문이다. 나름의 결론을 지어보자면 왜란이후 중건을 했지만 한꺼번에 다 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그때그때 지은 건물들의 시대가 달랐을 것이고 그때마다 글을 쓴 장인이 달라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