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로왕릉에 대해서
- 최초 등록일
- 2012.08.21
- 최종 저작일
- 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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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수로왕릉, 김수로, 김수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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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김해시 서상동 312번지에 위치한 수로왕릉에 다녀왔다. 수로왕릉은 가락국의 시조인 수로왕을 모신 무덤으로 사적 73호로 지정되어 있다. 왕궁(봉황대)의 동북쪽 평지에 조성되어있는데 원형봉토분으로 높이는 약 5m 이다. 고려 문종 때까지의 제사기록이 가락국기에 전한다. 비문에는 ‘가락국수로왕릉(駕洛國首露王陵)’이라 적혀 있다. 1647(인조 25년)에 왕명에 의해 묘비를 세웠고, 1865년(고종2년)에는 숭성전을 중수하였다. 경내에는 위패를 모신 숭선전과 신어문양이 새겨진 납릉 정문 등의 전각이 있고, 능의 뒤편에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2기가 남아 있다. 매년 음력 3월 15일과 9월 15일에는 춘추대제를 치르는데, 제례행사가 독특하여 무형문화재 1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일명 ‘수릉(首陵)’이라고도 하며, 김해김씨(金海金氏)의 시조이다.
탄생과 치적에 관하여는 ‘삼국유사’에 실린 ‘가락국기’에 전해지고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직도 나라가 없던 시절에 가락지역에서는 주민들이 각 촌락별로 나뉘어 생활하고 있었는데, 3월 어느 날 하늘의 명을 받아 구간이하 수백 명이 구지봉에 올라갔다. 그곳에서 그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춤을 추고 노래를 하자 하늘로부터 붉은 보자기에 싸여진 금빛그릇이 내려왔는데, 그 속에는 태양처럼 둥근 황금색의 알이 여섯 개 있었다. 12일이 지난 뒤 이 알에서 남아가 차례로 태어났는데, 그중 제일 먼저 나왔기 때문에 이름을 수로라 하였다고한다. 주민들은 수로를 가락국의 왕으로 모셨고, 다른 남아들은 각각 5가야의 왕이 되었다. 이때가 42년(후한 건무 18)이었다고 한다. 수로는 즉위 후 관직을 정비하고 도읍을 정하여 국가의 기틀을 확립하였다. 김수로왕은 가락국을 세우고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과 혼례를 치루었는데. 허황옥은 김해 허씨의 시조이다. 그러나 이것은 신화적이어서 그대로 사실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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