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작가 파금
- 최초 등록일
- 2011.12.19
- 최종 저작일
- 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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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작가 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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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巴金은 소설가이자 산문작가이다. 본명이 李堯棠인 巴金은 1929년 <<滅亡>> 발표 이후부터 巴金이라는 筆名을 썼다.
1904년 11월 25일 巴金은 四川省 成都의 봉건관료지주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淸왕조 정부에서 지방관을 지냈다. 어머니는 그의 첫번째이자 제일가는 선생으로서 고전문학을 가르치는 한편 巴金 자신의 말에 의하면 빈부와 귀천을 떠나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소년시절에 그는 마부, 하인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하층민들의 불행한 운명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또 정직하고 성실한 생활태도를 배웠다고 한다. 1914년과 1917년 어머니와 아버지가 차례로 세상을 떠난 뒤 그는 곁으로는 평온하고 우애스럽지만 속으로는 지독하게 으르렁거리는 봉건대가족의 세력다툼을 목도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봉건대가족제도에 대해 혐오하게 되었다고 한다.
1919년 五四運動은 열다섯 살 난 巴金을 꿈에서 깨웠고 눈을 뜨게 해 주어 그는 비로소 새로운 세계를 바라볼 수 있었다. 이 때문에 그는 스스로의 인생이 五四運動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五四新文化運動의 열기 속에서 그는 <<新靑年>>, <<新潮>>, <<每週評論>>, <<少年中國>>과 같은 진보적인 잡지를 통해 과학과 민주주의를 접했으며, 크로포트킨의 <<청년에게 고함>>과 같은 글을 통해 無政府主義의 영향을 받았다. 五四運動의 물결 속에서 그는 초기의 모호한 각성상태로부터 한층 발전하여 반제국주의와 반봉건주의에 기반을 둔 강렬한 혁명사상을 형성시키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억압받는 사람들에 대한 동정과 인도주의적인 믿음을 굳게 지니게 되었고, 그의 이런 생각은 이후 그의 문학활동에 견실한 기초가 되었다.
1920년 그는 成都外國語專門學校 입학시험에 합격하였으며, 동시에 다양한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軍閥統治에 반항하는 成都 학생들의 집단 수업거부, 청원활동, 진보적인 학생간행물 편집 등에 참가하였으며, 無政府主義를 지도사상으로 하는 단체를 조직하고 간행물의 편집을 담당하기도 했다. 1922년 그는 上海의 <<時事新報>> 副刊인 <<文學旬刊>>에 시와 산문을 발표하였다.
1923년 5월 그는 봉건가정의 울타리를 부수고 上海, 南京으로 가서 南洋中學과 東南大學附屬中學에 입학하여 공부했다. 1925년 여름 중학을 졸업한 뒤 北京으로 가서 北京大學에 입학하려고 했으나 폐결핵 때문에 시험을 치르지 못하고 병치료를 위해 上海로 갔다. 거기서 그는 계속 無政府主義 선전 활동을 했다. 그는 五四運動 이후 정치사상계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분화해가던 상황 속에서 자신의 사상과 행동에 심각한 모순을 점차 느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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