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서양열강의 침략과 동아시아 각국의 개항에 대하여 청, 일본, 조선을 중심으로 쓴 글입니다.
목차
Ⅰ. 화이론적 체제 하의 동아시아
Ⅱ. 동아시아와 서양열강의 충돌
1. 서양의 정세
2. 청, 일본, 조선의 개항
1) 화이론적 체제의 몰락
2) 일본의 도약
3) 이중 외압을 받은 조선
Ⅲ. 자본주의 세계에 편입된 동아시아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나폴레옹의 실각 이후 당시 유럽을 지배했던 것은 보수반동적 성격을 지닌 빈체제였다. 빈체제는 1848년의 혁명을 계기로 붕괴하였고, 헤게모니를 잡은 부르주아지들에 의해 자유주의 이념이 달성되었다. 이들의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보다는 민족의 자유를 추구하는데 중점을 두었고, 1850~1870년대에 민족주의 운동이 크게 성취되었다. 그 성취에는 이탈리아와 독일의 국가적 통일, 미국 남북전쟁 후의 국민적 통일, 러시아의 슬라브 민족적 통일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민족주의는 국가의 주권을 대외적으로 표현하는 국가주의로 진전되었다.
한편 1800년을 전후로 유럽에서 진행된 산업혁명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질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산업자본주의는 자유방임사상에 기반을 둔 자유무역에까지 나아가게 되었다. 국제무역, 국제투자가 증가했으며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그러나 잉여생산품에 대한 유통시장의 부족은 점차 국내경제의 침체를 불러왔다. 이러한 서구열강의 고민은 아프리카지역의 약탈, 신대륙발견으로 원자재, 상품유통이 해결되었고, 지속적인 부국강병을 이루었다. 서구열강은 이후 동아시아지역으로 그들의 상품시장을 점차 확대시켜 나갔다.
1870년대 경제공황을 거친 후 국가주의가 독점자본주의와 지나치게 결합됨으로써 대외팽창적인 제국주의를 추구하게 되었다. 혹자는 이러한 제국주의를 정치적 요소와 경제적 요소의 분명한 구분 없이 국가가 국내외적으로 그 역할을 활성화시키는 새로운 민족 팽창의 시대라 언급했다. 자유무역주의가 퇴조한 대신 보호무역주의가 대두했고, 해외 국가들을 단순한 무역시장에서 지속적 이용으로의 경제적 수단으로 보기 시작했다. 이에 열강들은 치열한 경쟁을 할 수밖에 없었으며 군력의 증강과 전쟁이 불가피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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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릭 홉스봄, 『제국의 시대』, (한길사,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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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37, (국사편찬위원회,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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