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조선의 근대화(메이지유신, 탈아론, 흥아론, 동아연대론)
- 최초 등록일
- 2021.09.18
- 최종 저작일
- 20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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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과 조선의 근대화(메이지유신, 탈아론, 흥아론, 동아연대론)"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Ⅰ. 일본의 근대화
1. 일본의 개항
2. 메이지 유신
3. 탈아론(脫亞論)
4. 흥아론(興亞論)과 동아연대론(東亞連帶論)
Ⅱ. 조선의 근대화
1. 조선의 개혁(쇄국에서 개항으로)
2. 조선의 개혁 실패 원인(조선이 근대화에 실패한 이유)
본문내용
1. 일본의 개항
○ 에도 막부의 통상 수교 정책 : 원래 에도 막부는 외국과의 교류를 거부하고 통상 수교를 하지 않았으나 중국의 아편 전쟁이 전해지면서 통상 수교 제한을 완화하기 시작
○ 문호 개방 : 청이 개항하고 약 10년 후인 1853년에 미국은 일본을 중국 진출을 위한 중간 기지로 삼고자 개국을 요구
- 페리의 1차 내항(1853년 7월)
1853년 6월 3일 미국의 동인도 함대 사령관 페리가 군함 흑선 네 척을 이끌고
우라가(浦賀)에 나타나서, 강압적인 자세로 필리 모어 대통령의 국서 수리와 개국을 강요
- 페리의 2차 내항 (1854년 2월)
페리는 1854년 2월 다시 7척의 군함을 이끌고 와서 가나가와 항구에 정박하자 이에 3월 초부터 요코하마에서 일본 측과 조약 교섭을 시작하였음. 페리는 왕샤 조약과 유사한 조약 체결을 희망. 그는 중국도 개국으로 인하여 큰 이익을 보고 있다고 역설하면서 통상관계의 수립을 요구.
- 중국의 아편전쟁으로 서양세력의 힘을 알고 있었던 에도막부는 200년 이상 지속된 쇄국을 포기하고 이에 굴복하여 가나가와 조약(1854년 3월)을 체결하고 문호를 개방. 이어 불평등 조약인 미ㆍ일 수호 통상 조약(1858년 7월)을 체결하였고, 비슷한 내용으로 이후 영국, 러시아, 프랑스, 네덜란드 등과도 조약을 체결. 이로써 일본은 서구 열강 중심의 국제질서에 편입.
- 가나가와 조약의 주요 내용 : 시모다, 하코다테의 개항과 제한 무역의 허용, 표류 선원의 구조 및 물자 보급, 영사 주재 허용 등 미국에 대한 최혜국 조항이었음.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