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자본주의와 근대문화
- 최초 등록일
- 2010.06.07
- 최종 저작일
- 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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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메이지이후 일본 자본주의가 유입대면서 형성된 근대문화에 대한 보고
목차
1. 메이지정부의 수립
2. 서양문화의 수용
3. 메이지 문화
4. 자본주의의 육성
본문내용
1. 메이지정부의 수립
1)왕정복고 쿠데타
- 메이지 유신 전야의 일본사회는 극도로 혼란하였다. 1867년 1월9일 메이지 천황이 14세의 나이 에 즉위하자, 정치의 주도권은 토막파가 장악하게 되었다. 이들은 급진파 공경들을 속속 조정으 로 불러들여서 세력을강화, 막부의 타도에 앞장서게 되었다.
- 한편 막부에서는 1866년 12월에 15대 쇼군에 취임한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프랑스 공사의 협력 을 얻어서 막정의 개혁을 단행하였다.
- 무력으로 막부를 타도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도사번에서는 선수를 쳐서 대정봉 환을 상주해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었다.
<고토 쇼지로 : 대정봉환의 뜻을삼은 건백서를 쇼곤 도쿠가와 요시노부에게 제출한다.
쇼군요시노부의 대정봉환 상주문을 조정은 수리하였고 토막파의 무력에 의한 막부 타도 계획 은 일시적으로 중단. >
- 고고쇼에서 열린 어전회의에서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에게 관위를 사퇴하고 영지를 반납할 것 을 요구한다
2)보신전쟁
- 에도막부의 폐지이후 고고쇼회의에서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에게 관위를 사퇴하고 영지를 반납 할 것을 요구하는 결정에 막부에 동적적인 세력은 격분하였다.
-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다음 해인 1868년 1월 막부에 직속해 있는 군대와 아이즈번 구와나 번의 군대를 교토로 파견하여 사쓰마 번과 조슈번을 중심으로 하는 신정부군과 도바후시미에서 교전하였다.
- 신식무기를 앞세운 신정부군에게 막부군 패배
3) 번제의 폐지
판적봉환(版籍奉還 ) 판적은 토지와 인민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봉건영주들로 하여금 영지를 조정에 헌상토록하고,이들을 그 지역의 지사로 임명하여 다스리게 한 조치.이로써 형식적인 의미의 봉건제도는 폐지되었다.
참고 자료
구태훈(2008). 일본 근세 근현대사, 재팬리서치21. 서령인쇄
유모토고이치(2004). 일본근대의 풍경. 연구공간 수유+너머 동아시아 근대 세미나팀 옮김. 그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