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혁명
- 최초 등록일
- 2010.05.17
- 최종 저작일
- 2008.05
- 7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멕시코 혁명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 입니다
목차
-포르피리오 디아스 대통령-
원인
멕시코 혁명
2차 혁명
혁명의 제도화
결론
본문내용
-포르피리오 디아스 대통령-
원인
멕시코 혁명의 시작은 포르피리오 디아스의 독재정치에 대항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그는 열렬한 자유주의자로 시작했으나 자유주의자인 후아레스와의 권력다툼사이 보수주의로 변해가게 된다. 그의 선거 모토가 ‘유효한 선거, 재선금지’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36년간의 통치기간 중 8번이나 대통령에 재선하는 등 절대 권력을 행사하였다. 디아스는 국민의 요구가 정치적 자유보다는 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충족에 있다는 것을 알자 정치적 자유를 억압함으로써 사회적 안정을 불러오고자 하였다.
디아스의 정책은 아래와 같다.
과학자 중심의 국가 변화
디아스는 과학자들로 내각을 구성하였고 권력의 중심부를 장악한다. 이들은 국가재정을 건전하게 운용하여 독립 이후 첫 흑자를 기록하나 원주민적인 것을 파괴하고 유럽 백인의 기술과 자본을 숭배하면서 멕시코 정체성을 뿌리 채 흔들어 놓게 된다.
외국 자본
철도망의 개설, 광산의 개발, 전신·전화망의 구축, 은행의 설립, 수출의 확대, 공업·농업·목축업 등의 확대 등 많은 경제 발전을 이룩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경제발전의 원동력은 거의가 외국인자본에 의한 것이었다.
당시 제국주의 시대가 본격화됨에 따라 제국주의 국가들은 ‘해외자본 투자+상품판매+원료공급’에 적합한 지역을 찾고 있었고 디아스가 이에 응하게 된다.
디아스는 민족 자본 육성보다는 국내 지주와 외국 자본의 결합을 추진하고 외국자본에 모든 특권을 부여하는 등 멕시코의 경제 체제를 외국자본에 집중한다.
결국 혁명이 시작된 1910년 이미 토지의 20%가량이 외국인 자본가들의 소유로 넘어가게 되었고 자원은 물론 상업이나 공업도 외국의 소유가 되고 말았다.
토지개혁
디아스는 후아레스가 공포한 ‘레르도 법’을 그대로 적용시킨다. 이 법률은 당장 필요하지 않은 지주나 교회의 땅을 매각하는 것으로, 원주민들에게 개인소유로 분할하지만 무지한 이들은 그 땅을 다시 팔아 새로운 지주의 탄생을 도왔다고 할 수 있다.
디아스의 지지자들은 토지 제를 이용하여 새로운 지주제로 부상하였고 외국인들 또한 그러한 제도를 악용하여 원주민 공유지는 약탈의 대상이 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