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직의 ‘혈의 누’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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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자식의 생사를 몰라 그들을 걱정하는 기색을 보이긴 하나, 그보다 더 본인의 신념에 따른 나라의 큰일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기에 가족의 신변이 걱정되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도 생긴다. 게다가 나라의 큰 뜻을 이루고자 다짐하는 모습에서는 김관일이 그 시대의 봉건적인 가부장 모습을 띈 남성의 표본임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김관일이 봉건적인 인물이라 단정 지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면 그의 또 다른 일면인 신문물과 신교육을 위해 외국으로 떠나려는 의지를 강하게 표출하는 모습이다. 이는 새로운 문화에 대해 적극 수용하려는 모습으로 보인다.


(전략) 그 날 해가 지고 저무니 남편이 돌아올까 기다리는 마음에 대문을 닫지 아니하고 앉아 밤을 새웠더라. 그 이튿날 또 다음 날을, 날마다 밤마다 때마다 기다리는데, 사람의 소리가 들리면 뛰어나가 보고, 개가 짖으면 쫓아가서 본다.
고대하던 마음은 진하고 단망하는 마음이 생긴다. 어느 곳에서 사람이 죽었다 하는 소문이 있으면 남편이 거기서 죽은 듯하고 어느 곳에서 어린아이 죽었다는 말이 들리면 내 딸 옥련이 거기서 죽은 듯하다.
남편이 살아오거니 하고 고대할 때는 마음을 붙일 곳이 있어서 살아 있었거니와 죽어서 못 오거니 하고 단망하니 잠시도 이 세상에 있기가 싫다.

→헤어진 가족을 애타게 그리며 아무도 없는 집에서 홀로 외로이 가슴 졸이며 가족을 기다리는 옥련 어머니의 모습에 안타까워진다. 또 작은 기척에도 혹여나 제 남편일까, 제 딸일까 싶어 오매불망 오도카니 기다리는 모습에서는 가족에 대한 진심어린 걱정과 그리움이 느껴지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목은 옥련의 어머니인 춘애의 ‘고전적인 여성상’의 모습이 더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가 생각한다. 옥련의 어머니에게서는 스스로 직접 잃어버린 남편과 딸을 찾아 나서려는 주도적인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저 혼자 집에서 기다리며 그들이 돌아오기만을 기원하며 고대한다. 이러한 모습은 답답할 지경이다. 그러다 이내 남편과 자식의 생사조차 확신할 수 없는 날들이 길어지자 자신의 목숨마저 내어놓으려는 극단적인 모습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또 다른 한 편으로서는 자신의 일(죽음이던 삶이던)에 있어 과감히 선택하는 모습에 있어서 이제껏 남편들의 말을 따르며 순종해온 여성상에 비해 다소 과격하지 한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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