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정책사
- 최초 등록일
- 2010.03.12
- 최종 저작일
- 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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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영화정책사>/ 김동호 외/ 나남’
요약 및 감상 리포트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며
Ⅱ. 한국영화발달사
Ⅱ-1. 정부
Ⅱ-2. 민간
Ⅱ-3. 외부세력
Ⅲ. 나오며
본문내용
Ⅰ. 들어가며
나는 한국영화발달사의 부분은 각 주체별로 구분하고자 한다. 본래 주체별 구분은 정부/ 토착자본/ 신지식층/ 외부세력으로 나누려고 했으나 토착자본과 신지식층이 뚜렷한 두각을 나타내지 않아 ‘민간’으로 통칭했다. 이 때문에 정부/ 민간/ 외부세력으로 구분해 서술한다. 본 리포트는 ‘/ 김동호 외/ 나남’을 기반으로 한다.
Ⅱ. 한국영화발달사
Ⅱ-1. 정부
우리나라에 영화가 처음 들어온 지는 100년이 넘었다. 특히 지난 2005년은 1919년 10월 27일 단성사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 가 상영된 지 86년을 맞는 해이다. 그동안 우리 영화는 탄생과 함께 엄격한 통제와 검열 속에서 험난한 길을 걸어왔고 많은 도전과 시련을 극복해 오늘 그 전성기를 맡고 있다. 역대 우리 정부의 영화정책은 그 시대적 구분과 영화법제의 변천에 따라 일제강점기-형성기-관치기-개방기로 나눌 수 있다.
(1)일제강점기
영화사적으로 볼 때 이 시기는 아래와 같이 3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조선에 영화가 처음으로 들어온 1900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최초의 극영화가 제작되는 1923년까지의 ‘외화소비 및 연쇄극 시대’/ 1923년 가 제작된 이후 1935년까지의 무성영화시대/ 1935년에 제작된 이필우의 이후의 발성영화시대다.
영화가 처음 들어와 상영되면서 일제는 영화를 흥행물로 취급, ‘보안법’에 따라 경찰 단속을 시작하였고 영화상영에 허가제를 도입했다. 특히 이 시기에는 민족주의적 색채의 영화인 나운규의 이 조선 전체에서 크게 인기 끌었고 좌파적 카프 문화예술인들이 왕성하게 활동한 기간인데 영화에 대한 검열제도, 영사제한 또는 금지 명령권, 극장 임검제 등이 시작되었다. 알제는 또한 우리 영화를 구조적으로 탄압, 말살하기 위해 영화단체의 통합작업에 착수, 영화를 전시 동원을 위한 선전도구로 이용했다.
참고 자료
‘<한국영화정책사>/ 김동호 외/ 나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