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슬라브니진스키에대해
- 최초 등록일
- 2009.10.20
- 최종 저작일
-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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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바슬라브니진스키의 생애,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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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니진스키라는 이름은 무용의 신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세계 발레사에 있어 지금은 하나의 신화적인 존재가 되어 있다. 러시아의 황실 무용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후 성 페테르스부르 그의 말에 마린스키 극장과 뒤에는 세르게의 디아글레프의 위대한 사설 발레단 “발레 륏스”의 주도 무용수로서 바슬라프 니진스키는 무용사에 하나의 신기원을 창조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거의 전설적인 명성을 획득했던 것이다. 그는 역사상 최고의 남성 무용수의 상징으로서 우상시되고 있을 뿐 아니라 당대엔 별로 인정받지 못했던 안무가로서의 그의 재능도 오늘날은 재평가를 받고 있으니 그가 안무한 “목신의 오후”화 “봄의 제전” 그리고 “틸 오일렌슈피겔”은 안무의 예술을 혁신한 20세기의 새로운 스타일로 인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니진스키는 평생을 가난과 온갖 시련에 직면하면서도 자신의 예술과 그것을 통해 인류에게 미와 환희를 선사하겠다는 단 하나의 열망에 전 생애를 송두리째 바쳤으나 철두철미 아웃사이드적인 내적 고뇌와 주위의 몰이해로 인해 점차 정신의 균형을 잃고 마침내 파멸할 수밖에 없었던 불행한 천재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인도주의자였으며 진리의 구도자였다. 그리고 사랑하는 것, 즉 무용이란 자신의 고유한 매개를 통해서 인류에게 성스러운 메세지를 전달하겠다는 것이 그의 삶의 목적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 같은 점에 단순히 무용가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니진스키의 위대성, 생애의 특이성이 있다 하겠다. 29세란 젊은 나이에 정신 이상이 되어 요양원으로 가기 직전 그의, 발광에 가까이 가면서 기록한 고백이라 할 “일기”속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는 인류를 사랑하는 광인이다. 나는 발광은 인류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니진스키의 생애를 훑어보노라면 흡사 저 북구의 신화에 나오는 “우수 부인”의 저주라도 받은 양 그의 주변엔 태어날 때부터 비극의 그림자가 따라다닌 듯 하며 그리하여 그는 한평생 마치 노예의 발목에 족쇄로 채워진 무거운 쇠사슬과도 같이 온갖 고뇌와 비참을 숙명처럼 질질 끌고 다닌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그가 태어나기 1년 전에 그의 어머니가 숙박하던 여관에 산적이 나타나 그녀는 놀 란 나머지 사흘 동안이나 입을 열 수도 없을 정도로 격심한 심적 타격을 받은 일이 있었는데 이 같은 재난은 흡사 니진스키의 불행한 생애를 예고하는 불길한 전조인 양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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