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역사 속 동성애
- 최초 등록일
- 2009.07.19
- 최종 저작일
- 20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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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역사에서 찾아지는 동성애의 사례에 대해서 조사하고, 오늘날 동성애에 대한 보수적인 시각의 원인에 대해서 논술하였습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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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동성애’라는 것은 동성의 상대에게 감정적·사회적·성적인 이끌림을 느끼는 것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현대 사회에서 소위 ‘동성애자’ 라 불리는 사람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시선은 보통 사람을 대할 때와는 다르게 차별적이고 그리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네덜란드와 벨기에 등 몇몇 국가에서 동성끼리의 결혼이 합법화 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 국가 인권 위원회 법에 의해서 금지되는 등, 부정적인 인식과 차별이 많이 완화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작년 겨울에는 고려 공민왕의 동성애를 소재로 한 영화 《쌍화점》이 개봉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개봉한지 4일 만에 관객 수 100만 명에 돌파 하며 흥행작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에 따라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 왕실에서 정말 동성애가 존재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과거 우리나라의 왕실에서는 동성애가 실제로 존재하였을까? 그렇다면 어떤 시대에, 어떤 형태로 나타났을까?
우리나라 역사적 기록에 언급된 동성애를 한 최초의 왕은 신라 제 36대 왕인 혜공왕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물론 ‘기록’ 에 의해서만 혜공왕이 최초이지 우리나라에 유교적 규범이 제대로 정착된 것이 조선시대이기 때문에 훨씬 더 이전,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에서도 왕실에서의 동성애는 존재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신라의 36대 혜공왕은 8세에 왕위에 올랐는데, 여자같이 얼굴이 곱고 여자 옷을 입기를 즐겨하였으며 비단주머니를 차고 도사들과 어울려 놀며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이렇듯 왕의 직위에 있으면서 여자처럼 꾸미고 놀기에 열중하다 보니, 혜공왕이 원래 여자인데 남자로 태어났으므로 신라에 불운한 일이라는 소문까지 돌았고, 원래는 여자로 태어났어야 했는데, 아들을 원했던 경덕왕이 표훈도사를 시켜 옥황상제에게 아들을 빌어 혜공왕이 태어났다는 야사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또한, 고려시대에 남색으로 유명한 왕으로는 7대 왕인 목종을 들 수 있다. 목종은 19세에 왕위에 오르지만 목종의 모후인 천추태후는 정치적 야심을 버리지 못하고 섭정을 하며 정치를 좌지우지 하고 한편으론 김치양과 불륜관계를 맺으면서 아이까지 낳게 된다. 심지어 김치양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목종의 후계자로 삼으려는 음모를 꾸미면서 목종은 점점 정치에 관심을 잃게 되고, 유행간 이라는 자와 동성애에 빠지게 된다. 목종은 유행간에게 벼슬을 내려주는 한편, 모든 정사를 유행간과 의논하였고, 후에는 유행간에게서 소개받은 유충정이라는 자와 동성애를 하게 되고 결국 고려조정의 일은 유행간과 유충정에 의해 좌지우지 되고 말았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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