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길준에 대해
- 최초 등록일
- 2009.05.16
- 최종 저작일
- 2006.06
- 4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1,000원
소개글
유길준에 대해 정리한 자료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유길준에 대하여
유길준은 1856년 철종7년부터 1914년까지 살았던 개화사상가, 정치가이며 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성무(聖武), 호는 구당(矩堂)이다.
서울에서 태어났고 진사를 지낸 유진수의 아들이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가 일어나 서양인들이 즉각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소문이 나돌아 많은 서울 사람들이 피난을 하자, 그의 집안도 선영(先瑩)이 있는 경기도 광주군 덕풍리로 낙향했다. 이곳에서 피난살이를 한 지 3년째 되는 1869년 봄에 서울로 돌아와 아버지와 외할아버지인 이경직에게서 한학을 배웠다.
1870년(고종7년) 박규수의 문하에서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김윤식 등과 함께 실학사상을 배우는 한편 ‘해국도지’와 같은 서적을 통하여 해외문물을 습득하였다. 1881년 박규수의 권유로 어윤중의 수행원으로 신사유람단에 참가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일본유학생의 한 사람이 되었다. 이때 일본의 문명 개화론자인 후쿠자와가 경영하는 게이오 의숙에서 유정수와 함께 수학하였다. 이때 그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양 삼국의 단결을 목적으로 조직된 흥아회에도 참가하여 일본의 학자 및 정치가들과 교류도 하였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민영익의 권유로 학업을 중단하고, 1883년 1월에 귀국하여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의 주사에 임명되어 한성판윤 박영효가 계획한 ‘한성순보’의 발간사업에 실무책임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민씨 척족세력의 견제로 신문발간사업이 여의치 않게 되자 주사직을 사임하였다. 그해 7월 보빙사 민영익의 수행원으로 도미하여, 일본유학 때에 알게 된 생물학자이며 처음으로 다윈의 진화론을 일본에 소개한 메사추세츠주 세일럼시의 피바디 박물관장인 모스의 개인지도를 받게 된다.
참고 자료
① 한국근대 개화사상과 개화운동 (한국근현대사연구회/신서원)
② 유길준전 (유동준/일조각)
③ 한국사연구총서유길준연구 (윤병희/국학자료원)
④ 개화기의 인물 (이광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