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정변 직 후 1885년 동아시아 국제정세에서 조선이 취할 입장을 주관적으로 정리하고 설명
- 최초 등록일
- 2024.02.22
- 최종 저작일
- 202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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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사의 이해
주제: 갑신정변 직 후 1885년 동아시아 국제정세에서 조선이 취할 입장을 주관적으로 정리하고 설명하시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갑신정변의 의의와 한계
2. 갑신정변 이후 조선의 입장에 대한 주관적 입장
Ⅲ. 결론
Ⅳ. 참고문헌
본문내용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면 도태되거나 낙오된다. 진화의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유전학적으로 진화해야하는데, 이때 적절하게 진화하지 못한다면 멸종하고 만다. 서구에서는 동아시아보다 먼저 근대화를 이뤘는데, 이때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문호를 개방하고 근대 문물과 문명을 빠르게 받아들여 근대화를 이뤘다. 당시 흥선대원군이 집권하고 있던 조선은 서양 오랑캐의 천한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문호 개방을 거부하였고, 유교문화가 중심이었던 조선의 양반이나 권력가는 청을 사대하며 문호 개방을 격렬히 반대했다. 당시 조선에서 대국은 청나라였고, 청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어려서 일찍이 유학을 하고 와 외국의 문물과 문명을 접하고, 시야가 확대된 젊은이들이 문호개방을 외치긴 했지만, 가부장제와 상명하복이 뚜렷하던 조선은 새파랗게 어린 신진관료들의 주장보다는 연로가 지긋하여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이들의 입김이 더 셌다. 본고에서는 일본에 의한 국권침탈 이전, 근대화를 주장하는 이들과 반대하는 이들이 격변하던 시기에 벌어진 갑신정변에 대해 살펴보고, 실패로 끝난 갑신정변에서 찾을 수 있는 의의와 한계를 알아보며, 마지막으로 갑신정변 이후, 변화한 동아시아 정세에서 조선이 취할 수 있었던 입장에 대해 주관적 견해를 설명하고자 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