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자 김병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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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14
최종 저작일
20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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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법원장 김병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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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의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는 교육자요, 법학자요, 정치가요, 애국자였다.
교육가로서는 30세 때 경성법학전문학교와 보성전문학교에서 법학 강의를 맡아 인재 양성에 노력했던 일이고, 법학자로서는 법학을 전공하여 33세 때 변호사가 되어 조선변호사 회장과 변호사협회 회장으로 있으면서 많은 항일 인사들의 억울한 사정을 변호하고 구제했던 일이다.
그는 1887년 12월 15일 전북 순창군 복흥면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조선조 때 홍문관, 사헌부와 함께 삼사라고 일컬었던 사간원의 관원이었다. 부친의 벼슬이 관원인 관계로 김병로는 어린 시절에 주로 조부모의 슬하에서 자랐다. 가인의 15대 할아버지는 호남의 거유(巨儒) 하서(河西) 김인후요, 아버지 상희씨는 사간원의 정언을 지냈다. 어머니 고씨는 의병장 고경명의 후예이다
2대 독자였던 가인은 어린 시절 무척 외롭게 자랐다. 여섯살 나던해 할아버지가, 이듬해 아버지가 돌아 가셨다. 그래서 8살이던 1896년 집안의 기둥이던 할머니 박(朴)씨가 가인을 위해 독서당을 세워 한문공부를 시켰다.

이런 김병로를 가리켜 동네에서는 신동이라고 불렀다. 1899년 13세 때에는 당시의 조혼 풍습에 따라 네 살 위인 연일 정씨를 신부로 맞아 결혼을 하였으나, 결혼 전에는 조부와 부친의 상으로 나이에 비하여 가혹한 고독의 시절을 보내기도 했었다. 17세가 되어서는 한말 유교학자로 대가인 전우의 문하에 들어가 미처 못 배운 학문을 마저 익힐 수 있었다. 이 무렵 김병로는 개항지로 한창 전성기를 맞이한 목포의 일신학교에 가서 그때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신학문인 영어며, 수학이며, 세계역사 등을 배우는 데 몰두하였다.
그러다가,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공포되자 울분을 참지 못해 자살할 것을 생각하였으나 배우던 신학문을 그만두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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