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론]오다 노부나가의 리더쉽
- 최초 등록일
- 2009.01.12
- 최종 저작일
- 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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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관리론]오다 노부나가의 리더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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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노부나가의 결단과 냉혹함을 볼 수 있는 일화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독특한 개성, 개방성과 결단력, 그리고 자존심과 약간의 인간적인 결함(독단과 성급함)을 가진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쉽을 보여 주었다. 오다 노부나가는 오와리의 센고쿠 다이묘 누부히데의 아들로 태어났다. 2살때 이미 나고야의 성주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청년기에 걸쳐서 기묘한 행동을 많이 했기 때문에 ‘오와리의 바보’라 불리기도 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총명하다고 알려진 동생 노부유키와의 권력싸움에서 이김으로써 오와리의 지배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얼마 후 스루가의 막강한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대군을 이끌고 침공해왔고 노부나가는 숫적으로 열세였지만 노부나가의 기지에 힘입어 격파 할 수 있었다. 그 후 노부나가는 승승장구 커갔고, ‘천하포무’라 새긴 도장을 쓰게 되었다. ‘천하포무’ 라는 구절이 상징해 주듯이 노부나가는 오랜 기간에 걸친 전란의 시대에 통일의 비전을 보여주는 무장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동시에 주목할 만한 개혁 정책들을 과감하게 실시해 나갔다. 이것은 카리스마적 리러쉽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우선 그는 기존의 권위와 세력들을 과감하게 부정했다. 대단한 베짱이 였는데, 당시 위세를 떨치고 있던 불교세력에 대해서도 철퇴를 가했다. 광신적인 신도들은 전체 일본을 통일시키고자 하는 노부나가에게 완강하게 저항했지만 결국 항복을 얻을 수 있었다. 대신 노부나가는 예수회 선교사들에게 대한 보호 조치를 확대했는데 이것은 기독교에 대한 관심보다는 불교 사찰들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으로 상당히 정치적인 선택 이였다. 다음으로 그는 가문에 얽매이지 않고서 능력에 따라 과감하게 등용하는 개방적인 인사정책을 밀고 나갔다. 미천한 출신인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을 과감하게 등용하는 한편, 오랫동안 섬겨온 신하라 할지라도 능력이 모자라거나 문제가 있으면 과감하게 내쫒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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