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식민시대]에 관하여
- 최초 등록일
- 2008.07.03
- 최종 저작일
- 2008.07
- 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바벨론식민시대]에 관하여 쓴 레포트입니다.
열심히 작성했습니다.
목차
1. 정황
1) 팔레스타인의 유다인들
2) 바벨론 포로민들
3) 이집트의 디아스포라 (흩어진 유다인들)
2. 바벨론 포로기 - 신학적 접근
1) 포로기로부터의 신학적 위기
2) 유다 멸망에 대한 신학적 반성과 대응
3. 결론
참고자료) 신바벨론의 역사
본문내용
1. 정황
서 너 차례에 걸친 바벨론의 침략과 유다의 멸망은 유다 사회 전반에 급격한 변화를 초래했다. 전쟁으로 인한 사람들의 죽음 및 바벨론으로의 포로 이송은 이스라엘의 인구를 격감시켰으며, 이스라엘 전역은 황폐화되었다. 어떤 이들은 앗수르가 식민지에 대해 강압적 통치를 한 데 반해 바벨론은 비교적 온건한 통치방법을 취했다고 보지만 이러한 차이는 지엽적이고 표피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밀러 J. 맥스웰, 「이스라엘 역사」, p. 525.
유다의 입장에서는 앗수르나 바벨론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그들은 유다의 지배층을 강제로 이송한 것 외에도 유다 대부분의 요새화된 성읍들을 철저히 파괴하였고, 자신들에 저항했던 자들을 가차 없이 처형하였다. 성전을 비롯한 왕궁과 귀족들의 집들이 파괴되었으며, 다윗 왕조는 종결되었고, 성전예배도 끝이 나 버렸다.
1) 팔레스타인의 유다인들
유다 백성들의 삶의 여러 모습들이 상당히 변한 것은 사실이나, 바벨론의 정책은 그리 억압적이지 않았다. 그들은 유다인들을 조직적으로 못살게 굴거나 멸절시키려 하지 않았다. 한 세기 전의 앗수르인들과는 달리, 바벨론인들은 유다로 몰려와서 수도를 재건하고 부분적으로 이방인들을 식민하는 것과 같은 짓을 자행하지 않았다. 도리어 이 지역이 하나의 정치적 구성체로 존립할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의 조치들만이 취해졌던 것 같다. 과거에 앗수르인들이 이 지역에 설치한 군사 설비들이 이제 바벨론의 지배하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느부갓네살은 새로운 군사 기지들을 설치하거나 병사들 또는 이방인들을 이 지역에 정착시키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유다의 국민생활을 정상화시키기 위하여 이미 여러 가지 조치들을 취하였다. “아무 소유가 없는” 빈민들은 포도원과 밭을 분배받았다(렘 39:10, 왕하 25:12). 즉 이전에 땅이 없던 계층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어느 정도 자산의 재분배가 실시되었다. 알베르츠(R. Albertz)에 의하면 “팔레스틴의 유다인들은 그 구성원에 있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보다 상대적으로 사회적 지위도 높지 않고, 수에 있어서 다수에 속하는 사람들로 소지주, 혹은 땅이 없는 하층민으로 형성되었다”고 본다. 그야말로 ‘비천한’ 사람들만이 황폐화된 유다 땅에 남아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지켜나가는 형국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