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식의 칼을 쳐서 보습을
- 최초 등록일
- 2008.05.18
- 최종 저작일
- 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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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김두식의 칼을 쳐서 보습을 독후감입니다
목차
이 책의 미덕
평화주의 이해
메노나이트는 개인 구원 위한 평화주의자?
구약의 하나님 vs 신약의 하나님?
나의 입장
본문내용
나는 김두식의 [칼을 쳐서 보습을] 구입하여 읽으면서 몇 가지 감정이 교차하였다. 그것은 기다림과 감사와 미안함, 의아함이었다. 기다림이란 기독교 평화주의 이해가 척박한 이 땅에서 일구어낸 최초의 성과라는 것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평화주의가 신학자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법학자이자 평신도의 노력으로 소개되었다는 점에서 신학하는 사람으로서 저자에게 감사함이, 한국 교회에는 미안함이 앞섰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아주 산뜻하게 정리된 평화주의에서 무언가 미흡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다시 주의해서 읽으면서 기독교 평화주의 또는 존 요더의 평화주의의 신학적 근거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평화주의의 신학적 근거는 기독론과 교회론, 제자도이다. 아나뱁티스트들에게 평화주의는 제자도의 본질이다. 이 점을 확신하지 못하면 평화주의는 단지 불가능한 이상을 추구하는 완전주의자들의 과대 망상이 되고 만다. 바로 이점이 라인홀드 니버의 문제점이자 요더와의 차이를 가르는 지점이다. 그리고 김두식이 자신의 입장을 밝히면서 끝내 기독교 평화주의를 확신하지 못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는 여기서 김두식의 책을 평화주의자의 입장에서 비판하려 한다. 아마 본서를 기독교 외부의 관점에서, 그리고 정당한 전쟁론이라는 평화주의 바깥에서, 그리고 평화주의 안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평화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김두식의 약점을 최대한 부각시키려 한다. 이런 전략을 흔히 의도적 흠집내기라 할 것이다. 괜한 트집잡기라고 할까. 쓸데없는 부풀리기라고 할까? 내가 여기서 비판하려는 것이 실제로 김두식의 글 곳곳에 쓰여져 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