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림유사의 국어 자료사적 성격
- 최초 등록일
- 2008.04.06
- 최종 저작일
- 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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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계림유사의 국어 자료사적 성격에 대하여 조별 과제로 제출했던 자료입니다.
국문학과 과제로 썼습니다.
목차
■ 개 괄
■ 본 문
● “계림”의 유래
● 내용과 의의
● 전사 자료와 통시성
● 체계의 불일치
● 계림유사에 수록된 고려어 어휘
■ 맺 음 말
# 붙 임
본문내용
■ 개 괄
계림유사는 중국 북송의 손목(孫穆)이 편찬한 일종의 견문록이며 역어집(譯語集). 저자가 숙종 8년(1103)에 서장관으로서 사신을 수행하여 고려에 와서 당시 고려조의 조제(朝制)․토풍(土風)․ 구선(口宣)․ 각석(刻石) 등과 함께 고려어 약 360어휘를 채록하여 3권으로 분류․편찬한 책이다. 고유의 문자가 없던 시기에 외국인이 외국문자로(그것도 표의문자로) 전사한 자료의 특수성 때문에 이 시기에 대한 음운사 기술은 그렇게 활발한 편이 되지 못한다. 그나마 논의된 결과도 어떤 합일점을 찾기가 힘들다. 특히 모음체계에 관한 논의는 중국 운서의 특수성 때문에 어려움이 가중되는 측면이 없잖아 있는데, 몇몇 되지 않는 업적이 가히 각인각색이라고 할 정도이다.
■ 본 문
● “계림”의 유래
‘계림’은 옛날에 청구(靑丘), 해동(海東), 동이(東夷)등과 같이 우리나라를 이르던 이름이다. 계림은 원래 시림(始林)으로서 경주 계림의 수풀 지대를 이르던 이름이었으나, 후에 박혁거세가 계정에서 태어났고, 왕비 ‘알영’이 출생할 때 계룡서(雞龍瑞)가 나타났으므로 신라를 계림국이라 이르던 데서 출발한 이름이다.
계림유사를 펴낸 이가 중국의 송나라 사람 손목이라는데는 이의가 없다. 그러나 손목이 어떤 사람이며, 무슨 의도로 이 책을 펴냈는지에 대해서는 믿을만한 기록이 없다. 이에 대해 민국판(民國板)의 ‘설부’의 계림유사 첫 머리에 “奉使高麗國信書狀官...”이라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손목은 송나라 사신의 일원인 서장관으로 고려에 와서 고려에 대한 견문을 넓히고 고려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수집하여 돌아가 계림유사를 펴낸 것으로 추측된다. 계림유사의 편찬 연대는 원본이 전해지지 않고 정확한 기록을 찾을 수가 없어 자세히 알 수가 없다. 단지 여러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단편적인 내용을 통하여 근사치를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