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 최초 등록일
- 2007.12.10
- 최종 저작일
- 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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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양 조경사를 수강시 창덕궁 자료
목차
1. 창덕궁 부용지와 주합루 권역의 공간배치를 모식도로 그리고 공간구성에 대해 설명하시오.
2. 동궐도에 의하면 주합루 앞의 어수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취병이 조성되어 있다. 취병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복원에 대한 각자의 견해를 제시하시오.
3. 상림십경-창덕궁후원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4. 애련정과 연못의 시각적 특징에 대해 알아봅시다.
5. 연경당의 공간구성 특징을 알아봅시다.
본문내용
1. 창덕궁 부용지와 주합루 권역의 공간배치를 모식도로 그리고 공간구성에 대해 설명하시오.
부용지
창덕궁 부용지 일대는 조선후기 궁궐 후원의 백미로 꼽힌다.
낙선재에서 중희당 터를 지나 북쪽으로 고개길을 넘어가면 부용지 일곽을 중심으로 드넓은 창덕궁 후원이 펼쳐진다. 현재 부용지 입구는 그 창덕궁 후원의 초입에 해당한다. 이곳에서부터 창덕궁 후원이 시작되며 후원의 곳곳에는 수많은 정자각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부용지를 중심으로 바라볼 때 북쪽에는 2층 규모의 웅장한 주합루가 높은 단위에 조성되어 있고, 남쪽에는 아담한 부용정이 부용지에 발을 담고 있다.
또한 서쪽에는 돌기단 위에 영화당이, 그 반대편에는 이곳 부용지의 유래를 말해주는 사정기비각과 서수 모양의 석루조가 보인다. <동궐도>에 의하면 1820년대 무렵의 부용지 일대의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는데 현재의 모습과 거의 흡사함을 알 수 있다.
부용지는 가로 29.4m 세로 34.5m 이며, 네모난 연못 가운데에 둥근 섬이 있다.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라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전통적인 우주관을 구현한 것이다.
부용지의 물은 땅에서 솟아오른다. 원래 부용지에는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세조 때 이곳에서 4개의 우물을 찾았는데 이를 마니, 파리, 유리, 옥정이라 이름지었다는 것이다.
그 후 숙종 16년(1690)에 네 우물을 정비하고 이를 기념하여 비를 세우고 사정기비각을 건립했다고 한다. 사정기비각 부근에 석루조를 만들어 물을 끌어오기도 했는데, 오얏꽃 문양을 양각한 것으로 봐서 현재의 석루조는 순종대에 이르러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용정 쪽 장대석에는 물을 박차고 오르는 물고기의 역동적인 모습이 양각되어 있다. 이 물고기를 통해 상징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로 해석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