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천에 대한 레포트
- 최초 등록일
- 2007.12.03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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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전주천에 대하여 직접 체험하고 조사한 내용을 보고서 형식으로 구성하였습니다.
사진자료도 첨부하였어요~
목차
없음
본문내용
<천양정>
천양정은 지난날 이웃에 있었던 다가정과 함께 전주8경의 하나인 다가사후의 풍류를
구성하는 유서깊은 사정[활터]이다
천양이란 버들잎을 화살로 꿰뚫는다는 뜻으로써 천양정은 정면 6칸, 측면 2칸의 규모에 팔작지붕 구조로 지난날 이웃에 있었던 다가정과 함께 전주8경의 하나인 ‘다가사후’(多佳射帿)의 풍류를 구성하는 유서 깊은 사정(射亭)으로서 1984년 지방문화재자료 제 6호로 지정되었다.
천양정이 전주천의 한 갈래인 다가천의 서쪽 냇기슭에 최초로 세워진 것은 1712년(숙종 38년)의 일이다. 그러나 지은 지 9년 만에 홍수로 말미암아 정자가 냇물에 떠내려감으로써 천양정은 오랫동안 전주 땅에서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그리고 그 대신 1722년(경종 2년)에 다가정이 새로이 들어서면서 온고을 한량들의 풍류를 떠안게 되었다.
홍수에 떠내려간 지 무려 118년 만인 1830년(순조 30년)에야 천양정은 재건되었는데, 다가천을 사이에 두고 다가정이 북쪽에 사후를 세웠기 때문에 천양정은 남쪽에 사후를 세우게 되었다. 그리하여 세찬 북풍을 거슬러 화살을 쏘아야 하는 다가정에는 젊은 한량들이 모이고 남향의 아늑한 골짜기에 자리잡은 천양정에는 나이 든 한량들이 모이는 관행이 저절로 생겨났다.
일제 강점기 때 다가산에 일본 신사가 들어서면서 그 동안 민족혼의 계승처로 구실해 오던 다가정은 졸지에 폐지되고 정자 건물이 신사 옆으로 옮겨 세워져 일본의 신들을 위한 사무소로 사용되는 비운을 맞았다. 그러나 천양정만은 일제의 간악한 민족말살정책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살아남아 온고을 국궁의 명맥을 지금껏 꾸준히 지켜 나오고 있다.
천양정 정면모습(현재) 사진
현존하는 천양정의 모습
활쏘는 모습 사진
천양정은 지금도 활터로서의 구실을 해내고 있다
<유연대>
커다랗게 곡선을 그리며 흐르는 전주천과 어깨를 나란히한 채 한참을 함께 달려가는 기다란 산자락을 시내 남서쪽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신흥중고교 뒤에서부터 시작하여 도토리골과 어은골을 거쳐 진북사(鎭北寺)에 이르기까지 남북으로 뻗친 고만고만한 표고의 산줄기를 가리켜 유연대라 부른다.
역사적으로 볼 때 유연대는 사실 뭉게구름처럼 왕성하게 피어난 아름답고 귀중한 것들을 속에다 감춘 채 겉으로는 안 그런 척 능청을 떨어온 겸손한 산이다.
지금도 유연대 일원에는 각급 교육기관들이 다수 자리를 잡고 있다.
참고 자료
전주시청홈페이지 http://www.jeonju.go.kr/
전주시 관광관련 사이트 http://tour.jeonju.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