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의 자식교육
- 최초 등록일
- 2007.11.17
- 최종 저작일
- 20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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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세종대왕의 자식교육에 대한 분석내용인데 아무리 세종대왕이라도 자식 일은 마음대로 안 되었다는 등의 사실을 분석하고 개인 견해를 나타내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아무리 세종대왕이라도 자식 일은 마음대로 안 되었다
작년에 학교도서관에서 우연히 고우영의 수레바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조선시대에 있던 여러 가지 야사들을 짤막하게 나열한 책이었다. 그런데 그 책의 내용 중에 조선시대에도 궁녀들끼리의 동성애가 있었고, 그로 인해 세자빈이 파문 당하는 일이 있었다는 대목을 읽고 적잖이 충격을 받기도 하였는데, 마침 기말고사 레포트 주제가 세종실록에서 한 가지 사건을 찾아서 자신의 견해를 쓰는 것이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이것을 주제로 잡았고, 그리고 비단 세자빈의 동성애만 문제 삼을 것은 아니라 세자에게도 무언가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하는 개인적인 사견을 달아가며 이야기를 풀어나갈까 한다.
일단 개요를 설명하자면, 세종대왕의 세자는(후에 문종) 14살 때(1427년) 네 살 많은 휘빈 김씨를 세자빈으로 맞아들였으나, 세자빈 김씨는 결혼 3년 만에 세자의 사랑을 얻으려는 별의별 해괴한 비방을 쓰다가 발각이 되어 결국 국모의 자질이 없다는 이유로 쫓겨나게 된다.
[[세종 11년 7월 19일 휘빈 김씨를 폐하고 그 일을 종묘에 고하다
지신사(知申事) 정흠지(鄭欽之)에게 명하여 휘빈(徽嬪)을 폐(廢)하는 것을 종묘에 고하는데 쓸 향과 축문을 전달하게 하였다. 그 축문에 말하기를,
“총부가 덕을 잃어 세자의 배필이 될 수 없으므로 대의(大義) 위하여 〈사사로운〉 은의(恩義)를 끊고, 감히 폐빈(廢嬪)을 고유하오니 밝게 살피소서.”하였다.
그리고 세종은 김씨를 축출한 지 3개월여 만에 봉여의 딸을 세종 14년 5월 13일에 근정전에서 왕세자빈으로 책봉하게 된다.]]
그리고 세종은 김씨를 축출한 지 3개월여 만에 봉여의 딸을 세종 14년 5월 13일에 근정전에서 왕세자빈으로 책봉하게 된다.
참고 자료
고우영 저 수레바퀴 자음과 모음
조선의 성풍속 정성희 저 가람기획
조선왕조실록 홈페이지 http://sillok.history.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