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현대사 - 얄타협정
- 최초 등록일
- 2007.11.12
- 최종 저작일
- 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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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얄타협정에 관한 레포트 입니다 ^^
목차
1. 얄타회담
1) 얄타회담의 목적 및 배경
2) 얄타협정의 내용
2. 얄타체제
3. 결론
본문내용
1. 얄타회담
1) 얄타회담의 목적 및 배경
제2차 세계대전은 1945년에 들어서면서 연합국의 추축국에 대한 승리가 눈에 보이기 시작하였다. 소련군은 이미 1944년 봄에 폴란드를 점령하였고 또한 체코슬로바키아까지 일부를 점령한 상태에서 독일에 진격할 채비를 갖추고 있던 차였다. 이러한 가운데 미국, 영국, 소련 3연합국의 수뇌들은 1945년 2월4일부터 11일까지 소련의 크리미아 반도의 휴양지 얄타에서 회동하였다. 그리하여 이 회담에서는 전후의 새로운 국제연합문제, 독일문제, 폴란드문제, 태평양전쟁과 극동문제가 논의되었다. 미․영․소 3개국은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고 얄타회담에 참석했다. 먼저 영국은 얄타회담에서 프랑스에 줄 독일의 점령지역을 얻고 소련의 폴란드에 대한 일방적인 지배를 저지하고 대영제국에 대한 보호를 추구하고자 했다. 한편 소련은 전쟁으로 황폐화된 소련경제를 부흥시킬 배상금과 아시아에서의 국익을 위해서, 그리고 폴란드에 대한 소련의 지배를 확실히 인정받고 독일을 약체화시키기 위해서 얄타회담에 참가했다. 끝으로 미국은 국제연합을 미국영향력 하에 두고 소련을 대일전(對日戰)에 참전시키며 폴란드에서 공산주의의 세력을 감소시키길 원했다. 이들 3개국은 서로 상대방의 의도를 의심했지만 얄타회담에서는 주요 문제에 있어서 비교적 쉽게 합의가 이루어졌다. 얄타회담에 임할 당시 미, 영 연합군은 독일 군에 의해서 1944년 12월 중순부터 1945년 1월 중순까지 벨기에에서 꼼짝 못하고 묶여 있었다. 처칠은 스탈린에서 동부전선에서 동계공격을 강화하여 서부전선에 대한 독일군의 압력을 제거해 주도록 요청하여 스탈린의 동의를 얻었다. 이에 반해 소련군은 동부전선에서 독일 군을 맹공하여 얄타회담 시기에 이르러 이미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를 통과하는 넓은 전선을 따라 서쪽으로 향하고 있었고 루마니아는 이미 독일의 수중에서 벗어났다. 그리하여 소련은 유럽전선에서 군사적인 우위로 인하여 얄타에서 매우 유리한 협상의 고지를 점하고 있었다. 극동에서의 군사적 상황 또한 외교적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당시 일본은 필리핀과 마리아나제도에서 미군과 접전을 벌이고 있었으며 중국에 100만 명, 일본 본토에 200만 명, 그리고 만주와 한국에 100만 명의 군대를 갖고 있었다. 미국은 이미 항공기, 선박, 병력에 있어서 상당한 손실을 보고 있었으며 원자폭탄도 아직은 개발되지 않은 상태였다. 결국 승리가 가까워오는 만큼 미국과 영국은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하기 위해서 소련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