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어학]가사도의 공전법- 공전법의 제문제를 읽고
- 최초 등록일
- 2007.06.27
- 최종 저작일
- 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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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동원 교수의 공전법의 제문제를 읽고
공전법에 대한 소개 및 감상 의문점 등을 적었습니다.
목차
1. 공전법에 대한 초보적 이해
2. 공전법에 대한 의문점
3. 논문에 대한 소감
본문내용
1. 公田法에 대한 초보적 이해
秦 때 井田제를 폐지하고 阡陌을 열어 토지사유제를 실시한 이후부터 토지분배가 균등하지 못했다는 문제는 계속 거론되어 왔다. 또한 역대로 사람들은 계속해서 限田의 방법으로 토지사유자의 소유권을 평균화하거나 심지어는 토지국유화를 한 뒤에 농민에게 균등하게 배분하여 경작케 하는 방법을 주장하기도 했다. 역대왕조는 객관적 상황이 다르고 토지분배의 불균형 정도도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限田과 균전과 같은 몇몇 조치를 취했어도 이는 반드시 토지분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西晉의 占田法과 삼국의 屯田制 및 북위의 균전제가 다르다는 것이다. 점전법은 결코 토지국유화를 한 뒤 균등하게 농민에게 분급 경작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점전법은 기본적으로 토지사유제를 인정하는 제도이다. 均田法은 우선 경지와 인구의 합리적인 배합을 목적으로 하고 균전제의 기초는 토지국유화이다.
남송말 당시의 재정난이나 그 대책으로는 한전설이 있었다. 南宋말에는 그 한전설로부터 공전설로 나아가고 賈似道의 公田法이 실현되게 되는데 그 간 영종의 가정년간(1208~1224)에 葉適의 贍軍買田의 설이 나오고 있다. 이것은 절동로 온주에 있어서 민유전토를 주 당국이 사들이고 그 토지의 수입으로 주의 군사부양비를 조달하려고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전반적으로 실시되지는 않았으나 이종초 사천의 노주에서는 겨우 2년의 단기간이지만 실시되고 있었다.
참고 자료
조강(윤정분 譯), 『중국토지제도사』, 대광문화사, 1999,;
剪伯贊(이진복 외 譯 ), 『중국전사』, 학민사,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