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극장전을 읽고
- 최초 등록일
- 2008.01.04
- 최종 저작일
- 20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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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남송 대 유극장전을 읽고 소개와 새로 알게된 점 등을 적었습니다
목차
1. 유극장 소개
2. 새로 알게된 점
3. 느낀점
본문내용
1. 劉克莊 소개
劉克莊은 처음에 徐照 등 永嘉 四靈의 영향을 받았고, 晩唐詩風의 近體詩를 많이 썼다. 말년에는 농촌에 은거하면서 陸遊의 시를 닮아갔다. 江湖派의 대표적 시인이며, 필화사건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의 시론은 강서시파는 책을 바탕으로 하여 시를 지어 진부한 잘못을 범하고 만당체는 책을 버림으로써 시를 지어 비속한 잘못을 범한다고 두 파의 폐단을 지적하였다. 또한 강서시파가 지나치게 새로운 뜻의 표현을 추구하는 것을 불만으로 여겼다. 영가사령에 대해서는 그들의 시가 폭이 좁은 점을 비판하였다.
12세기 초 북송이 金에게 멸망당한 뒤 송의 왕족과 귀족들은 양자강을 건너 남하하여 남송을 건국했다. 성황을 이루었던 북송의 시민 사회는 이 과정에서 격심한 혼란을 겪었으며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사대부들 또한 민족적인 현실을 극복하고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 하에서 남송 초기의 詞人들은 음률이나 사의 형식을 따질 겨를도 없이 자신의 격정을 쏟아 놓았기 때문에 문장이 산문화하는 경향이 많았다. 남성적이고 비분강개한 애국주의적 격정을 노래한 사인이 劉克莊이다.
劉克莊은 본래 강호파의 영수로, 현재 시집 중에는 그 이름이 없지만, 《瀛奎律髓(영규율수)》에 언급한 말을 통해, 모음집에 모아놓은 사람들이 이미 진도인 책의 진면목을 보여줌을 알 수 있다.
2. 새로 알게된 점
劉克莊은 眞德秀를 사사하는 동안 1233년 9월에 宗正簿가 되어 처음으로 京官이 되었다. 근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召對를 대비한 箚子 셋을 마련한 것이 전집에 실려있는데 그 세 번째가 財政에 관한 것인데, 첫 箚子에서 財政을 논한 것은 짧은 조정경력에 비추어본다면 이례적으로 주목할만 것이다. 端平更化로 史彌遠의 26년간의 독재가 끝나고 쏟아져 나온 대책 가운데 극장의 이른바 이 備對箚子가 한 몫을 차지하고 경정 연간 賈似道의 公田法 시행의 실마리를 열었다고 밝힌 점은 公田法 연구가 어려운 상황에서 탁월한 식견이라 사료됩니다.
劉克莊은 和糴의 해를 논하면서 말하기를 “姦贓의 재물을 장부에 기록하고 圩田御莊을 사들여, 합하여 糴本으로 만들어 和糴을 보강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