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경복궁 답사 레포트
- 최초 등록일
- 2007.06.14
- 최종 저작일
- 20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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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경복궁을 답사한 후 쓴 답사레포트입니다.
감사합니다.
목차
들어가며
조선왕조와 함께한 경복궁의 시작
답사 후기
본문내용
들어가며
오늘날 궁궐은 왕과 왕실 가족이 살던 공간의 의미를 뛰어넘어 조선시대의 역사와 정치뿐만 아니라 최고의 건축기술과 사상을 만날 수 있는 `박물관`이다. 그러나 이러한 궁궐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가 그리 많지 않은 듯 하다. 사실 역사공부가 덜 된 상태에서의 답사는 단지 오래된 건축물에 대한 감상일 뿐 효과적인 답사가 되지 못한다. 전에 덕수궁을 가서 느낀 것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한국전통문화와 역사 강의의 답사는 정말 뜻깊은 시간이었다. 교수님의 명쾌한 설명은 어떤 연유에서 조각물을 설치하고 건물을 지었는지와 건축양식의 장점에 대해서 또 건물의 쓰임과 용도, 배치,등을 이해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주셨다. 이번 답사 레포트는 그 때 가서 들은 교수님의 설명과 내가 느낀 점 등에 추가로 인터넷사이트와 문헌을 참고했으며, 답사 때 실제로 내가 찍은 사진들로 구성했다.
조선왕조와 함께한 경복궁의 시작
경복궁 전경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면서 시작한 조선왕조는 5백년 동안 고려의 도읍지였던 개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왕조에 걸맞는 도읍을 정하고 국정운영의 기틀을 다지는 일은 매우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여 도평의사사로 하여금 한양천도를 공식적으로 요청하게 한 뒤, 한양을 새로운 도읍으로 정하게 된다. 이에 따라 같은 해 9월 1일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을 설치하고, 10월 25일 한양 천도를 단행하게 된다.
그런 가운데 조선왕조의 으뜸궁궐인 경복궁의 창건은 새롭게 개국한 조선왕조의 기반을 다지기 위한 국가적 사업의 출발점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경복궁은 조선시대 궁궐 중 가장 중심이 되는 곳으로 태조 3년(1394)한양으로 수도를 옮긴 후 세웠다. 궁의 이름은 정도전이 『시경』에 나오는 “이미 술에 취하고 이미 덕에 배부르니 군자만년 그대의 큰 복을 도우리라”에서 큰 복을 빈다는 뜻의 ‘경복(景福)’이라는 두 글자를 따서 지은 것이다. 선조 25년 임진왜란(1592)으로 인해 창덕궁·창경궁과 함께 모두 불에 탄 것을 1867년에 흥선대원군이 다시 세웠다. 그러나 1895년에 궁궐 안에서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왕이 러시아 공관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주인을 잃은 빈 궁궐이 되었다. 1910년 국권을 잃게 되자 일본인들은 건물을 헐고, 근정전 앞에 총독부 청사를 짓는 등의 행동을 하여 궁의 옛 모습을 거의 잃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