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백범일지
- 최초 등록일
- 2007.05.15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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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백범일지 독후감입니다. 2페이지 꽉찬 분량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백범김구는 1876년 7월 11일 해주읍 근처 백운방 기동에서 김창암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벼슬을 하던 명문가였지만 윗대 할아버지가 역적으로 몰려 죽음을 당해 집안이 몰락하게 되었다. 자신의 가문이 떳떳한 명문가 이지만 어쩔 수 없이 상놈들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어린 김구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궁금하다. 서당에 갈 수 없었던 김구는 이 생원을 선생으로 모셔다가 글공부를 하기는 하였으나 과거에 대하여 실망하고 돌아왔다. 그 뒤 풍수지리와 관상을 공부하다가 이름을 김창수로 바꾸고 동학교도가 되었는데, 나는 여기서 김구의 많은 면모를 볼 수 있었다.
우선 김구는 많은 신도들을 포교하였다. 하지만 말재간으로 동학에 대하여 널리 광고하여 포교한 것이 아니고 “악을 짓지 말고 선을 행하는 것이 이 도(동학도)의 조화입니다”라는 상당히 당연스레한 문구를 가지고 사람들로 하여금 도를 깨치게 했다. 이는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았으며 곧 많은 연비를 얻어 접주가 되었다.
얼마 후 전봉준이 전라도 고부에서 동학 농민군을 일으켰다. 김구를 비롯한 접주들도 군사 동원 명령을 받았다. 여기서 나는 김구와는 관련 없이 궁금한 점이 생겼다.
분명 국사시간에 배우길 동학농민군은 못된 탐관오리들을 벌하고 곡식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어 백성들이 환영하는 한편 동학군이 전투라도 하면 직접 밥을 지어다가 동학군 진영에다 날랐다고 들었다. 하지만 김구가 직접 본 일을 적은 이 일지에는 “동학도들이 밀려오면 논에서 벼를 베던 사람들도 낫을 버리고 달아나곤 했다.”라는 문장이 있어서 나를 혼동 스럽게 했다. 또 나는 북접과 남접의 동학군이 서로 그다지 좋은 사이는 아니었지만 관군이 무차별 공격을 가하자 연합하여 관군에 대항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백범일지에는 또 “구월산 부근에는 이동엽이 이끄는 동학군이 있었다. 이동엽의 부하들은 우리 부대 본진 가까이까지 쳐들어와 노략질을 하곤 하였다.” “내가 아직 자리에 누워 있을 때 이동엽이 전군을 거느리고 패엽사로 쳐들어온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원래 사기가 떨어진데다가 장수를 잃은 우리 군대는 불의의 습격에 여지없이 패하고 말았다.”라는 문구가 있다.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이동엽의 동학군이 김구의 동학군을 해하고 장수들을 처형했다고 한다. 외척 세력을 물리치기 위해 일어난 동학농민군이 왜 서로끼리 싸웠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방대한 인터넷 정보바다 어디에서도 내 목마름을 해소해 주지 못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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