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극예술연구회와 유치진
- 최초 등록일
- 2007.04.20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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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극예술연구회와 유치진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유치진이라는 작가를 극예술연구회와의 관계속에 파악하려고 하였습니다. 극예술 연구회의 발전속에서 유치진이라는 작가의 위치는 어떠한 것이었는지 조명해보았습니다.
목차
1. 서론
2. 본론
(1) 극예술 연구회
(2) 극연과 유치진의 상반된 생각들
(3) 극연의 시기별 상황과 유치진의 활동
3. 결론
본문내용
유치진(柳致眞, 1905-1974)은 우리 근대희곡사상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극작가이다. 생전에 그가 남긴 희곡, 시나리오, 연극비평, 수필등은 모두 전집 9권에 이를 만큼 방대한 분량을 가지고 있다. 처녀작인 <토막>(『문예월간』, 1931. 12~32.1)에서부터 <청개구리는 왜 날이 궂으면 우는가>(童劇, 1964)에 이르기까지 대략 30여년에 걸쳐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한강은 흐른다>(『사상계』1958.9)로 실질적인 극작활동이 종결된다고 보고 있다. 그래도 매우 긴 작품활동 만큼 우리 현대 희곡사에서 유치진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유치진의 초기 작품세계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극예술 연구회이다.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귀국하여 실질적으로 본격적인 연극 활동을 하고 작품 활동을 하게 된 것이 극예술연구회(劇藝術硏究會, 이하 극연, 1931. 7. 8)이기 때문에 초기 유치진의 작품세계를 말할 때 극연을 떼놓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극연을 조직하고 활동하면서 유치진은 많은 영향을 받았고 이 단체의 중심인물로 서게 되면서 유치진과 극예술연구회는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가지게 된다. 극예술연구회는 초기 유치진의 작품세계에 매우 많은 영향을 미쳤고 주류가 아니었던 자신의 위치를 올려놓음으로써 극예술연구회의 중심에 서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의 희곡에 대한 생각을 그대로 실천하면서 극연의 활동은 유치진 중심으로 흘러가게 된다. 유치진의 초기 작품 세계에서 극연을 빼놓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만큼 중요한 극연에서의 유치진의 활동을 살펴보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극연의 활동을 이끌어 나갔고 주류가 아니었던 유치진이 중심이 되어가는 과정을 살펴보면서 극연과 유치진의 관계에 대해서 고찰해보려고 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