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인천 향교를 다녀와서...
- 최초 등록일
- 2007.04.16
- 최종 저작일
- 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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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천 향교를 다녀와서 쓴 기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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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5월 31일.. 5월의 마지막 날이었다. 진작에 친구들과 인천문화유적지 답사를 겸해서 막 봄이 시작되는 시기에 강화도로 여행을 다녀오고 싶었는데... 이래저래 시간을 미루다보니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에야 겨우 짬을 내어 근처의 향교를 다녀오기로 했다. 문학경기장을 지나면서 몇 번씩 멀리서 바라보다 2년 전인가 친구와 잠깐 들러 이리저리 기웃기웃 해보았었는데.. 이번에는 향교에 대한 자료도 많이 찾아보고 많은 것을 알아본 후에 직접 눈으로 보러 가려니 더욱 설레이고 신이 나는 듯 하였다.
백화점 앞에서 버스를 타고 문학경기장 건너편에 내려서 향교를 향해 갔다.
인천향교는 인천시내에 남아있는 향교 중 하나로 인천시내에 향교가 두 곳이 남아있는데 나머지 하나는 부평향교이다. 향교는 국가에서 지방에 세운 교육기관으로 인재 양성과 풍속 교화라는 기능을 수행하였으며 지금의 학교의 기능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향교는 고려 인종 20년부터 각 지방에 나타나게 되었으며 서원과 비교하였을 때 서원은 개인이 설립한 사설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향교로 가는 길에는 전통민속마을과 놀이마당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향교에 다 달았다 싶어 큰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섰는데 그곳은 아쉽게도 향교와 함께 건립된 인천도호부청사였다. 도호부청사는 지금의 시청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으로 이곳은 원래 15~16동의 건물로 구성되었다고 전하지만 현재는 객사의 일부와 19세기 초 건물인 동헌, 훨씬 후대에 세워진 창고만이 남아 있다. 그곳 앞마당에는 남학생 몇 명이 전통놀이를 체험하러 왔는지 전통혼례복을 입어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는 향교를 찾는 것도 잠시 잊은 채 나도 활옷을 입어봤으면 하는 생각에 잠겼다. 친구의 재촉으로 한참을 헤매다 도호부청사 옆의 조그만 언덕을 올라 향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 때의 관청인 인천 도호부 청사와 학교인 향교가 문학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을 통해 이곳이 인천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동네 이름도 관교동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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