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도호부청사
- 최초 등록일
- 2006.12.17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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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인천도호부청사를 다녀와서 유적지에 대한 설명과 느낀점등을 적었습니다.
목차
1.유적지를 선택한이유
2.유적지 소개
3.느낀점
4.첨부사진
본문내용
1. 유적을 선택한 동기
“인천”하면 생각나는 것은 광역시, 항구도시, 맥아더의 인천 상륙작전, 강화도의 첨성대, 팔만대장경 정도이다. 인천시내에 존재하는 문화 유적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다. 인천은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큰 도시이다. 따라서 그 역사 또한 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인천 시내에 존재하는 유적지에 대해서 떠오르는 것이 없다는 것이 나에게는 무척이나 이상한 일이었다. 인천에 벌써 4년째 살고 있는 나로서는 상당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인천 시내의 유적지에 대해 알아보았고, 과거 인천지역을 관리하는 기관이라 할 수 있는 인천도호부청사를 방문해 본다면 과거의 인천의 역사에 대해서 조금은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2. 유적지 소개
(1) 인천 도호 부청사란?
1982년 3월 2일 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 건축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조선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의 건물은 객사 지붕에서 발견된 명문(銘文)에 의해 1677년(숙종 3)에 중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천부읍지》에 의하면 객사(客舍) 20칸, 동헌(東軒) 10칸과 내동헌·삼문(三門) 외에 공수(公須)·삼문·사령청(使令廳)·향청(鄕廳)·군관청(軍官廳)·훈무당(訓武堂)·작청(作廳)·옥사·사창(司倉)·좌기청(坐起廳)·어용청(御用廳)·수미고(需米庫)·군기고(軍器庫) 등이 있었다고 한다.
군 관청은 광복 전까지 파출소로 사용되다가 불타 없어졌고, 내동헌은 1955년까지 인천시 문학출장소로 사용되다가 헐렸다. 현재의 동헌은 옮겨지을 때 축소 건축한 내동헌으로 추정된다. 1950년에 지금의 위치로 이전 개축하여 당시의 배치와 형태를 알 수 없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