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한국철학사의 독보적 사상가였던 조선말기의 혜강 최한기 선생의 사상에 관한 글입니다. 자료를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사상이 독보적이고,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서양학문에 개방적이고, 박학다식했던 분입니다. 조선말기의 서학의 도래, 말기의 역사, 사상사 등에 관심있으신 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봅니다.
목차
1. 머리말
2. 서양 우주설의 수용
(1) 지구 구형설
(2) 지구 자전설
(3) 성기 운화
3. 기륜설과 기학적 우주관
(1) 기륜설
(2) 기학적 우주관
4. 맺음말
본문내용
문명의 형성 이래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한 시대를 관통하는 지배적인 사상이 있어왔고, 이런 지배적 사상은 후대의 더욱 강력한 사상이 그 자리를 대체할 때 까지 지속되기 마련이다.
근대 과학이 형성되는 중요한 계기 중의 하나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설이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구 구형설도 마찬가지이지만, 태양 중심설이 갖는 의미는 역시 사고의 전환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것은 동양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만큼 우주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문제는 철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다.
동양의 전통적 우주관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과 ‘하늘은 움직이고 땅은 고요하다’는 천동지정(天動地靜)으로 집약된다. 하지만 이러한 관념은 17세기에 들어서면서 한역 서학서가 유입됨으로써 도전을 받기 시작한다. 최한기에 의한 태양 중심설 및 뉴턴 역학의 수용에 이르러 그 정점에 달했던 서양 우주설의 수용은 전통적 우주설과 그에 근거한 주자학적 세계관의 붕괴와 괘를 같이 한다. 그러므로 우주설의 변화는 단순히 사실의 드러냄이나 진리에의 접근이라는 차원을 넘어 그 우주설과 맞물려 있던 철학 체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우주설은 혜강 최한기(惠崗 崔漢綺, 1803-1877)가 심혈을 기울여 공부했던 분야 가운데 하나로서 그의 철학, 즉 기학(氣學)의 형성과 직결된다. 동서 문명이 본격적으로 접하기 시작했던 19세기에 동양과 서양을 포괄하는 철학 체계를 구상했던 최한기로서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폐쇄적인 우주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우주설을 구축하는 것이 긴요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논문에서는 서양의 우주설의 영향으로 이루어진 최한기의 우주설의 변화 과정을 추적해 보고, 그러한 우주설이 최한기의 철학 체계, 즉 기학과 어떠한 연관 관계가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참고 자료
최한기 저, 김락진 역, 『신기통』, 여강출판사, 2004.06.10
한형조 저,『혜강 최한기』, 휴먼필드(청계출판사), 2000.07.01
김용헌 저, 『혜강 최한기 (한국의 사상가 10인)』, 예문서원, 2005.06.20
권오영 저, 『최한기의 학문과 사상 연구』, 집문당, 1999.03.20
김용옥(도올) 저, 『혜강 최한기와 유교』, 통나무, 2004.02.10
최한기 저, 손병욱 역, 『기학(19세기 한 조선인의 우주론)』, 2004.03.15
최영진 저, 『조선말 실학자 최한기의 철학과 사상, 철학과 현실사『, 2000.02.01
서욱수 저, 『혜강 최한기의 세계인식』, 소강, 2005.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