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지방의 의병항쟁
- 최초 등록일
- 2006.12.01
- 최종 저작일
- 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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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의병이란 국난을 당하여 정규군의 기능이 마비된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 침략군에게 대항한 민병을 말한다. 의병은 글읽는 선비들을 중심으로 유교주의 충의관에 입각하여 봉기한 일시적 전사단(戰士團)으로서 전술이나 화력 등에 의해 전쟁능력을 발휘하는 정규군과는 달리 무엇보다도 강고(强固)한 정신능력을 기본으로 삼았다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 그러므로 의병은 직접적인 전과나 전공을 기대하기보다는 적을 물리쳐서 향토를 지키고 나라를 보전하게 되는 결과에만 관심을 갖게 마련이
목차
서론
왜란초의 호남지방의 실상과 의병의 봉기
고경명군의 성군양상(成軍樣相)과 의병운동의 목표
맺음말
본문내용
의병이란 국난을 당하여 정규군의 기능이 마비된 상태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 침략군에게 대항한 민병을 말한다. 의병은 글읽는 선비들을 중심으로 유교주의 충의관에 입각하여 봉기한 일시적 전사단(戰士團)으로서 전술이나 화력 등에 의해 전쟁능력을 발휘하는 정규군과는 달리 무엇보다도 강고(强固)한 정신능력을 기본으로 삼았다는 점에 그 특징이 있다. 그러므로 의병은 직접적인 전과나 전공을 기대하기보다는 적을 물리쳐서 향토를 지키고 나라를 보전하게 되는 결과에만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따라서 의명은 성패와 이둔(利鈍)에 관계없이 때로는 세(勢)가 불리할지라도 반드시 싸워야 할 때 최후까지 싸워서 목숨을 바치고 충의를 지켰다. 의병의 역할은 관군부재의 상황에서, 혹은 관군이 적을 두려워하여 전의를 잃고 물러설 때 그들 앞에 나서서 적에게 대항함으로써 관군과 민중을 감발(感發) 흥기(興起)시켜 적을 막아낼 수 있다는 의지를 심어주는 것이었다. 이것이 결국 동심합력을 이루어 왜침을 극복할 수 있게 한 것이며, 실제로 있어서도 이러한 의병의 역할이 임진왜란의 극복을 가능케 하였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의병의 행동은 또한 그 만큼 큰 희생을 전제한 것이었으며, 그것이 곧 임진왜란시 전라도 근왕의병(勤王義兵)이 보여준 전형적인 행동양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왜란초의 호남지방의 실상과 의병의 봉기
임진왜란 초 변보가 있은 직후의 호남지방은 실화(實禍)를 입은 영남지방에 못지 않게 큰 혼란에 빠져 있었다. 왜침의 소문이 전해지자 징병이 있기도 전에 이 지방의 백성들은 모두 달아날 생각부터 하고 있었으며 미리 가재물을 매장, 혹은 이장하는 등 도피준비로 바빴다. 이러한 현상은 관가나 민간에 차이 없이 나타나나 일반적이니 경향이었고, 특히 경상도의 접경지역에 위치한 전라도 동북부지방의 경우에 더욱 심한 양상을 보인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