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 최초 등록일
- 2006.10.01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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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발해에 대한 발표문 입니다. 한국사 연습 시간에 발표한 내용 입니다.
목차
1.머리말
2.발해
3.발해에 관한 논란
4.맺음말
본문내용
발해는 고구려 유민 대조영이 만주 동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唐 측천무후 聖曆년간(698~700)에 건국한 나라이다. 고구려 유민을 주축으로 다수의 말갈족을 포용한 발해는 거란의 일격으로 멸망하는 後唐의 天成 4년(926년)까지 15대 230여년의 왕조를 이어 내려오며 海東盛國으로 불릴 정도로 국세를 떨치던 나라였다.
그러나 발해에 관해서는 그들 스스로가 기록한 그들의 역사나 기타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게다가 중국이나 소련 등에서는 발해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기 위한 목적의 연구가 진행되는 등 발해사 연구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우리의 역사이며 이를 위해서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 본 발제에서는 발해에 대해서 알아보고 발해사 연구에 있어서 논란이 되고 있는 점들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2.발해
668년 신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멸망시킨 唐은 고구려 유민 2만 8천여 가호를 중국 땅으로 강제 이주시켰는데 이때 발해를 건국한 것으로 알려진 대조영은 그의 아버지 걸걸중상과 함께 요서 지방의 營州(현 朝陽)로 이주했다. 695년 거란인 이진충 등이 영주도독의 통치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고 대조영은 이를 틈타 무리를 이끌고 만주 동부지역으로 이동하여 그 부근에 남아있던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을 규합하여 震國을 세웠다. 당은 발해의 건국이 기정사실이 되고 요하유역과 만주일대에 대한 지배가 사실상 어려워지자 705년 사신을 보내 발해의 건국을 인정하였다. 또 開元 원년(713년)에 당의 현종은 대조영을 渤海郡王으로 冊하였는고 그 이후 震國은 국호를 발해로 개칭하였다.
발해는 전성기 무렵에는 5京 15府 62州의 지방행정조직을 두었으며 지금의 대동강 유역에서 신라와 접하였다. 또 東京龍原府를 두어 해상으로 일본과 통교하고 南京南海府를 통하여는 신라와, 西京鴨淥府를 거쳐 압록강 하류에서 해로를 통하여 唐과 통교하는 등 활발한 문물교류로써 문화와 국력배양의 향상을 꾀하였다.
참고 자료
한국사 연구회 편, 『한국사 연구입문 제 2편』, 지식산업사
장창희, 「발해국 최초의 지역에 대한 문헌적 고찰」, 『발해사 연구 제 2집』, 연변대학출판사, 1993
송기호 역, 유득공 저, 『발해고』, 홍익출판사,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