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사]중기 후기 의병전쟁
- 최초 등록일
- 2006.06.30
- 최종 저작일
-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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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중기 후기 의병전쟁에 대해 정리했습니다..
목차
Ⅰ.들어가면서 2
Ⅱ.의병의 재기 2
1.추진세력과 참여층 3
2.의병의 전개 3
(1)충청도 의병의 항쟁 4
(2)전라도 의병의 활동 5
(3)경상도 의병의 항쟁 6
3.의의 8
Ⅲ.의병전쟁의 확산 8
1.군대 해산과 의병의 재편성 9
2.의병의 전개 9
3.의의 11
Ⅳ.독립군으로의 전환 12
Ⅴ. 의병전쟁의 한계 13
Ⅵ. 항일 의병 전쟁의 의의 13
본문내용
Ⅰ. 들어가면서
나라가 외적의 침입으로 위급할 때 국가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민중이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외적에 대항하여 싸우는 구국 민병을 의병이라 한다. 특히 구한말의 의병운동이란 국권을 수호하기 휘하여 일제침략에 물리적인 힘으로 항쟁한 민족운동이다.
의병을 시기적으로 분류를 하는데 대체로 크게 세 단계로 분류한다. 1894~1895년에 봉기한 갑오∙을미의병을 전기의병이라 하고, 1905년 을사조약 체결과 군대 강제해산 이전인 1907년까지 봉기한 의병을 을사의병 또는 중기의병이라 한다. 나아가 1907년 군대 강제해산 직후 대일전면전의 양상으로 확대 발전된 정미의병을 후기의병이라 한다.
지금부터는 의병의 재봉기 단계인 중기의병기와 후기의병, 그리고 독립군으로의 전환에 관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Ⅱ. 의병의 재기
전기의병전쟁은 1896년 10월에 끝을 맺었다. 비록 정부의 선유에 따라 해산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굴복한 것이나 동조한 것이 아니라 재봉기의 기회를 노리는 후퇴에 불과한 것이었다.
전기의 의병이 해산한 후에도 일제의 침략은 계속 강화되고 있었다. 조선에서 제1차적 경쟁자인 청(淸)을 축출한 일제는 정치∙경제∙문화적 침략을 심화시키면서 식민화의 기반을 굳혀 갔다. 때문에 1894년부터 조선은 일제의 반식민지가 되어갔다. 한편 일제는 열국의 정세를 유리하게 끌어가면서 최소한 조선만은 그들의 식민지로 점령한다는 제국주의적 흥정에서 국제적 고지도 확보해 가고 있었다. 그 유리한 국제적 고지 위에서 1904년 러일전쟁을 도발하였다. 그리고 한국이 중립을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군사적으로 굴복시켜 한일의정서와 한일협약을 늑결(勒結)하니 종래에 반식민지 상태에 있던 한국이 일본군의 군사지배와 고문(顧問)체제 아래 준식민지로 전락해 가고 있었다. 더구나 영국과 미국의 지원 아래 러일전쟁을 승리로 몰고 가서 끝내는 보호정치란 이름으로 1905년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함으로써 일제는 한국에 대한 식민적 지배의 정치적 절차를 밟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통감부의 정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다.
참고 자료
한국근현대사학회, 『한국근대사강의』, 한울, 1997.
민족사바로찾기국민회의, 『독립운동서-1(의병들의 항쟁)』, 민문고, 1995.
박민영, 『대한제국기 의병연구』, 한울, 1998
신용하, 『의병과 독립군의 무장독립운동』, 지식산업사, 2003